7회말 아닌 2회말에 조기 등판한 미래권력 한동훈…득일까 실일까
총선 승리 땐 대권주자로 입지 강화…패배땐 윤 대통령 레임덕과 한배 탈수도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지난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이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여권의 대권 잠룡인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집권여당의 새로운 간판으로 조기에 등판했다. 윤석열 정부 2년차, 야구로 치면 7월말이 아닌 2회 말 상황에서다. 통상 집권 후반기 재임 대통령의 레임덕과 맞물리며 유력 주자로 떠오르는 기존 정치문법과 맞지 않게, 대선을 3년이나 남기고 여권의 차기 얼굴로 전면 등장한 것이다.
당내 우선 과제로 수직적 당정관계 개선이 꼽히는 상황에서 '미래 권력' 한 전 장관이 '살아있는 현재 권력' 윤석열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쓴소리를 하며 차기 지도자로서 분명한 색깔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22일 여권에 따르면 한 전 장관은 오는 26일 전국위원회의 인준 절차를 거쳐 연내 비대위원장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정치권에선 윤 정부가 집권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 권력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과거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정권의 제5공화국 내내 2인자를 지키다가, 임기 7년차인 1987년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6월 항쟁 직후 6.29 선언을 발표하며 대통령 직선 개현 요구를 수용했고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회창 전 총재는 김영삼 정부 임기 반환점을 돈 4년차에 등장했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잠재적 대권 주자로 당 안팎의 주목을 받던 초선의 이회창 총재를 간판으로 내세웠고, 139석을 얻으며 제1당에 올랐다. 이듬해 7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 전 총재는 김영삼 대통령을 출당시키고, 김영삼 인형 화형식을 열었을 정도로 크게 각을 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명박 정부 5년차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진영 등 과감한 중도 확장 정책을 폈다. 결국 새누리당은 정부 심판론을 딛고 이듬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인 152석을 확보했다. 그는 대선 과정에도 임기 말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등 같은 당 소속 이명박 대통령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세 명 모두 미래 권력이 주도적으로 현재 권력을 비판해 총선 승리를 이끈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등판한 한 전 장관이 지난 2003년부터 20년간 호흡을 맞춰온 윤 대통령의 측근 이미지를 벗고 어떤 식으로 홀로서기를 할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당내에서는 원칙주의자인 한 전 장관이 맺고 끊는 게 분명한 만큼 윤 대통령에게도 가감없이 직언을 할 수 있다는 낙관적 시각이 적지 않다. 당 지도부 인사는 "한 전 장관은 대가 세고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며 "법무부 장관을 하면서도 거센 야당 공세에 잘 대응한 만큼 이 난국을 잘 헤처나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많다"고 전했다.
다만 한 전 장관의 경우 정권 초부터 유력한 미래권력으로 떠오른 만큼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해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지만, 당 안팎의 집중 견제를 받아 상처를 입기도 쉽기 때문이다. 한 전 장관의 경우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다면 단숨에 대권주자로 올라서 미래권력이 입지를 다질 수 있겠지만 패배할 경우 윤 대통령의 레임덕과 함께 한 배를 타야 할 수도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도, 한 전 장관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도 여권의 총선 승리가 절박한 상황이다. 따라서 정치권에선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만큼 때론 쓴소리도 하고 설득도 할 수 있는 비대위원장이 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전 장관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 때문에 지금은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며 "내년 총선의 승패는 한 전 장관이 미래권력으로서 인정을 받아 '정권 심판론'이란 회고형 투표를 '정권 재창출'이란 전망형 투표로 바꿀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다만 권력의 추가 이동하는 정권 말엔 두 사람 사이엔 미묘한 긴장관계가 흐를 가능성도 있다. 권력의 속성상 미래 권력은 현재 권력의 틀을 깨고 탄생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지금은 권력이 한 군데밖에 없기 때문에 윤 대통령과 한 전 장관의 관계는 척질 수가 없다"며 "다만 권력의 속성상 어느 즈음에는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을 밟고 일어나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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