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글 ‘내가 쓴 것처럼’ 페이스북 올리면···대법 “원작자 저작인격권 침해”
다른 사람의 글을 베껴 자신이 쓴 것처럼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사람에 대해 명예훼손에 따른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피해자 B씨가 작성한 글을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페이스북 계정에 47회 게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송씨가 무단 복제, 저작자 허위표시, 저작인격권 침해 등 3개의 행위로 저작권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원 글 작성자 B씨는 박사 학위가 있는 공학 분야 전문가였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공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역사 등에 관한 게시글을 다수 올리는 식견 있는 학자였다. 그런데 B씨와 소셜미디어 친구인 A씨는 그의 글을 복사해 보관하고, B씨가 학회에 기고한 글을 직접 부탁해 건네받기도 했다. 그러다 B씨가 2014년 페이스북 계정을 닫자 A씨는 이듬해부터 3년6개월에 걸쳐 그간 확보해둔 글을 자신의 계정에 계속 올렸다.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의 글에 일부 내용을 추가하거나 구성을 바꿔 자신이 작성한 글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A씨가 올린 글에는 “항상 박식하신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에 A씨는 “과분한 칭찬입니다” “쑥스럽습니다” 등의 답글을 달았다.
1·2심 재판부는 A씨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저작인격권 침해’에 대해선 엇갈린 판단을 내놨다. 저작인격권이란 저작자가 저작물에 대해 가지는 인격적·정신적 권리를 말한다.
1심 재판부는 무단 복제와 저작자 허위표시는 유죄로 보고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저작인격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저작인격권 침해까지 유죄로 보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이 타당하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A씨가 타인의 글을 마치 본인의 것처럼 올림으로써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게시한 저작물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마치 피고인의 저작물처럼 인식될 수 있어, B씨가 기존 저작물을 통해 얻은 사회적 평판이 의심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며 “B씨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해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을 야기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가 B씨의 글을 일부 바꾸면서 생긴 게시글의 주관이나 오류가 원래부터 B씨의 글에 있던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B씨의 전문성과 식견에 대한 신망이 저하될 위험이 있다”고도 했다.
대법원은 저작인격권 침해의 기준으로 ‘저작자의 사회적 가치·평가가 침해될 위험성’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침해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내용과 방식, 침해의 정도, 저작자의 저작물 등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춰 저작자의 사회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행위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대법원판결”이라고 밝혔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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