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찰지니까, 카메라 앞에 서기로 작심한 나영석 PD를 누가 당하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3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올해의 예능을 돌아본다. 트위치도 물러가는 마당에 유튜브 예능은 독점적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기안84의 활약을 제외하면 TV예능은 점점 에너지를 읽거나 고령화되고 있다. 그사이 이용진으로 상징되던 TV가 담지 못했던 웹예능 토크쇼의 새 시대는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근 30년 가까이 안방극장을 주름잡았던 1970년대생 톱MC들이 대거 유튜브로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말 유튜브를 시작한 유재석은 이제 자체 시상식을 진행할 정도로 하나의 세계관을 이룩했고, 코미디 대부 이경규가 막차를 타고 넘어와 OTT와 웹예능에서 젊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신동엽은 술방이 하나의 장르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이영지, 조현아 등 MZ가 만든 분위기 위에, 오랜 경력과 전연령, 전국구 인지도의 TV스타들이 들어와 술상을 차리면서 이내 국가적 권고를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게 됐다. 끊임없는 진정성 추구와 웹예능의 가벼운 몸집이 만난 결과다.
조금 옆에서는 역시나 TV스타인 탁재훈이 유튜브에서 물을 만나며 19금, 성인 콘텐츠 소재가 보다 가볍고 가깝게 다가오는 중이다. 초등학생들이 따라하는 '홍 박사' 밈을 비롯해 탁재훈으로 대표되는 젊은 여성과 중년남성의 티키타카 구도에 성상품화, 로리타 등등의 지적은 사라졌다.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오히려 새롭다.
단일 프로그램이 만든 파장이란 측면에선 <나는 솔로> 16기를 빼놓을 수 없다. 분명 연애예능인데, 지난 3~4년간 관찰예능과 예능의 스토리텔링 작법의 첨예화로 나아가던 연애예능을 돌연 거울효과를 담은 사회과학 교보재로 만들었다. 중요한 건 연애가 아니다. 공감, 교감, 관음과 반면교사의 안도가 뒤섞인 적나라한 리얼리티는 도파민 중독처럼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예능의 현주소를 보여준 탐사보도 같았다. 방송 자체도 자극적인데 프로그램 이후가 더 리얼이었다. <나는 솔로> 16기의 스타들은 방송이 끝난 후에도 방송과 무관하게 프로그램을 잡아먹을 정도의 이슈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생산했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일반인 예능의 일반인이 아마추어 출연자가 아니라 욕망을 가진 플레이어로 자각하고 방송에 잡아먹히든 말든 개인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의 첫 사례였다.
광야로 나아간 코미디의 새로운 전성시대가 계속 진행 중이고, 유튜브에서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 중인 유력 예능인들이 점차 새 땅에 적응하는 지금, 올해의 예능인을 꼽자면 단연 나영석 PD다. 뻔하지 않다. 지난 10여 년 간 차지했던 최고의 제작진, 기획자가 아니라 600만 구독자를 거느린 플레이어로서 말이다. 일찍이 웹예능과 TV예능의 접목을 실험하던 이들 집단은, 6개월 전부터 방송 문법을 버리고 아예 유튜버의 마음가짐과 몸집으로 채널을 리뉴얼했다. 더 나아가 나영석 PD는 본격적으로 크리에이티브로서 카메라 앞에 나서면서 <채널 십오야>는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 유튜브' 채널로도 거듭났다.
여기서 올해 나타난 예능 흐름 중 가장 재밌는 포인트가 있다. 출연자와 제작진의 경계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나영석 PD는 존재 자체가 예능 기획인 치트키가 됐다. 그만 나오면 재미와 웃음은 보장이다. 즉, 존재만으로도 기대를 품게 한다. 제작진이 판을 깔고 뒤로 물러서면 그 위에 연예인이 올라가 활약하는 너무나 당연한 예능 제작의 문법을 벗어나, 자급자족하는 유튜버,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생산 문법을 받아들인 결과다.
방송국과 코미디 프로그램 제작진이란 공통점이 있는 미드 <30rock>이 극본으로 만든 시트콤인 반면, 나영석 PD는 에그이즈커밍의 사내 행사와 사우들 사이에 실제로 들어가 현실 캐릭터와 에피소드로 웃음을 만든다. 물론, 라방과 나불, 지글 시리즈 등 그간 방송을 함께하며 쌓아온 인맥과 친분을 십분 활용하는 콘텐츠가 절반이긴 한데, 이때 연예인과 제작진이 거리감은 갑을 관계, 혹은 파트너가 아니라 그야말로 친한 동료, 친구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옥택연, 이상순 등의 연예인이 사내 문화센터 강사로 초빙되는 에그문화센터 코너나 박서준과 함께 3시간 넘게 뷔의 생일 도시락을 준비해 깜짝 이벤트를 하는 '보은의 신' 등이 그런 예다.
더 나아가 연예인과 스텝이 같은 역할로 출연한다. 연예인 게스트가 출연하던 자리에서 작가, PD, 기술직 스텝 등 직업의 세계를 풀어가는 라방을 하고, '출장 십오야'의 사내 체육대회 버전이나, 나영석 PD가 스텝들의 일일 셔틀 기사가 되는 '나영석의 부릉부릉'과 같은 예능 기획도 '사내' 인물들로 해결한다. 그 덕분에 김대주 작가를 비롯한 사내 직원들도 캐릭터가 잡히고 화목하고 즐거운 회사 분위기가 시청자들의 인식에 스며든다. 이는 에그이즈커밍에 엄청난 자산이다.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물론, 제작진 개개인에 대한 호감이 기대와 응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 서기로 결심한 나영석 PD는 사우와 함께하든 정우성과 함께하든 재미가 보장된 최고레벨의 MC로 활약 중이다. 이서진과의 여행예능부터 인터넷 라방 사과방송까지 장르불문 종횡무진이다. 기획력은 당연한 말이고 현재 예능선수 중 나영석만큼 호감과 인지도를 갖고 찰지게 MC를 볼 수 있는 예능인이 솔직히 떠오르지 않는다. 유튜브 채널 활약 이후 <콩콩팥팥>에서 잠시 비출 때마다 출연자나 시청자 모두 기대를 품게 되는 것처럼 그 존재감이 달라졌다. 지상파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방송 예능PD가 전격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작법을 전환하고, 연예인 의존도를 낮추고 자신의 팀 자체를 예능 소재로 만든 성공적인 실험은 올해 목격한 가장 흥미로운 예능의 장면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유튜브, 영숙SNS채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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