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관치로 변질된 은행권 ‘상생금융’

김수정 기자 2023. 12. 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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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도 엄연한 민간기업인데, 정부가 금융사를 공기업처럼 생각해 수익체계를 압박하고 있는데 어쩌겠냐. 은행은 별수 없이 정부가 원하는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또 정부의 압박에 떠밀리다 보니 은행이 졸속으로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는 면도 있다."

최근 금융권 상생금융 관련 취재에 나서자 복수의 은행권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전한 말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은행권 상생금융에 채찍질하는 주요 배경으로 총선을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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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도 엄연한 민간기업인데, 정부가 금융사를 공기업처럼 생각해 수익체계를 압박하고 있는데 어쩌겠냐. 은행은 별수 없이 정부가 원하는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또 정부의 압박에 떠밀리다 보니 은행이 졸속으로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는 면도 있다.”

최근 금융권 상생금융 관련 취재에 나서자 복수의 은행권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전한 말이다. 금융권 상생금융 바람의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이었다. 금융 당국은 은행이 상생금융의 주체가 돼 서민의 이자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운 시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는 모두가 공감한다. 하지만 금융권 상생금융 방안은 정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독단적으로 밀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 발언 이후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금융취약계층 상대로 각각 1000억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내놨지만, 다시 추가 지원에 나섰다. 금융 당국 반응이 냉랭했기 때문이다. 이후 당국과 8대 금융지주 회장이 모여 상생금융 지원 간담회를 열었고,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에 합의했다. 은행권 상생금융이 ‘자율’이 아닌 ‘관치’로 변질된 것이다.

이번 상생금융 안은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은행권은 지난 21일 ‘2조원+알파(α)’ 규모의 상생금융 안을 발표했다. 고금리 국면에서 대출금을 갚기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최대 300만원, 평균 85만원 정도의 이자를 돌려주기로 했다. 대출금 한도는 2억원으로, 금리 연 4% 초과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은 차주(돈 빌린 사람)에게 연간 납부한 이자의 90%를 지급한다. 은행권은 ‘이자 캐시백’으로 약 187만명의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1조6000억원이 지원될 것으로 추산했다.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이자를 돌려주자는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대출금 2억원 한도, 4% 초과 이자 납부액 90% 지급, 최대 300만원’ 공식을 도입하면 대출금 3억원을 연 5%의 금리로 받아 지난 1년간 원금과 이자를 갚아온 소상공인·자영업자는 180만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180만원으로 대출 빚에 허덕이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구제하기는 역부족이다.

형평성 문제과 도덕적 해이 부작용도 거론된다. 신용도가 낮아 1금융권에서 대출받지 못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됐는데,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 경감이 상생금융 논의의 출발이 된 만큼 이들도 캐시백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일률적인 지원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 우려도 제기된다. 아울러 이자 고통만 놓고 보면 2금융권을 이용하는 중·저신용자에 대한 지원이 더 절실한데, 소상공인·자영업자만 집은 ‘핀셋 지원’에도 비판이 제기된다.

고금리 속 은행이 취약차주를 지원하는 건 바람직하다. 다만 금융 당국의 관치가 아닌 은행권이 자발적으로 상생의 동기를 부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은행권 상생금융에 채찍질하는 주요 배경으로 총선을 거론하고 있다. 정치 이벤트를 앞에 두고 은행권을 향해 지원책을 요구하는 당국의 모습이 굳어질지도 우려가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은행의 건전성 악화, 주가 하락 등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은행의 자발적 지원으로 상생금융이 그 이름처럼 은행과 서민이 진정 ‘상생’하는 방안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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