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했던 도쿄 전범 재판이 아시아 갈등 조장했다"
냉전 맞아 일본을 대 공산주의 요새화한 미 정책도 영향
“전범재판은 승자의 정의”라는 보수세력 주장 보편화 돼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75년 전인 1948년 12월 22일과 23일,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고 버마-태국 죽음의 철교 사건 등 학살을 자행한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와 중국 난징 대학살과 강간을 막지 않은 마츠이 이와네 전 일본 육군 사령관 등 7명의 전범이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그러나 75년이 지난 지금에도 동아시아에는 전범 처리에 대한 불만이 여전하다.
이와 관련 개리 배스 미 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동아시아에 불만이 여전히 큰 것은 도쿄 재판이 독일 전범을 처결한 뉘른베르크 재판과 달리 불완전했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진행된 도쿄 전범재판에서 27명의 전범이 처벌됐다. 뉘른베르크 법정이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개국 판사로 구성된 데 비해 도쿄 법정은 중국, 인도, 필리핀, 호주 등 11개국 판사들로 구성됐다.
재판과정에서 중국 판사는 대영제국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영국 판사들에 대해 “제국주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터무니없이 군다”고 비난했다. 또 진주만 공격에 대한 처벌로 제한하려던 미국의 의도에 불만을 가진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동맹국들이 주도하도록 재판을 이끌었다. 이에 따라 중국과 필리핀 검사들이 일본의 학살과 성폭력 사례를 대거 제시했다.
그럼에도 도쿄 재판은 전쟁으로 인한 원한을 풀지 못했고 지금까지 동아시아에서 지속되는 다툼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2차 대전에 항의하면서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 13명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때마다 중국인은 중국 정부의 비호 아래 들고 일어난다. 한국도 공식적으로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희박한 일본을 상대로 분을 참지 못한다.
반대로 자민당 정치인 등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은 도쿄 전범 재판을 “승자에 의한 정의”라고 비난하면서 도조 히데키 등 피고인들의 무죄를 주장한 인도인 판사의 판결을 길게 인용하곤 한다.
일본엔 독일과 달리 전국가적 뉘우침 없어
도쿄 재판이 이처럼 졸속으로 진행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뉘른베르크 재판보다 더 많은 나라가 재판에 참여하면서 판사들이 합의를 이루기 어려웠다. 네덜란드, 프랑스, 인도 판사들과 호주 재판장 및 필리핀 판사의 의견이 충돌했다.
도쿄 재판에서 판결이 내려진 뒤 미 연방대법원이 미국 변호사들로 하여금 판결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도록 허용했다가 국제 재판에 연방대법원이 관할권이 없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만연된 의견 불일치로 인해 도쿄 법정의 권위가 훼손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정의가 제대로 실현됐는지를 믿지 못하게 됐다.
법률적 불일치 외에도 도쿄 재판은 군사적 목적과 국제정치에 의해 오락가락했다. 일본 상륙작전이 가져올 인명피해를 우려한 미 트루먼대통령 정부는 전쟁을 단숨에 끝내기 위해 대규모 폭격과 봉쇄, 원자폭탄 투하를 하면서 일본과 종전협상을 벌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초토화한 뒤 미국은 히로히토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일본과 합의했다. 덕분에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냈고 천황이 미군의 일본 점령을 합법화하도록 지원했다. 그러나 히로히토 천황이 온존하고 보수주의 지배층이 부활하면서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전후 논란이 해소되지 못하고 일본이 애국적이고 정당한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마저 허용했다.
나아가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요새로 삼았다. 이 때문에 하급 전범들에 대한 처벌이 중단되고 심지어는 A급 전범 용의자들을 사면복권했다. 대표적 인물이 기시 노부스케다. 만주전쟁에 고위 장교로 참여한 그는 진주만공격 당시 도조 내각의 일원이었으며 전후 미국에 의해 3년 동안 A급 전범으로 수감돼 있었다. 1948년 전범재판을 받지 않은 채 석방된 외상을 거쳐 1957년 총리가 됐다. 그는 도쿄 재판을 승자의 정의라고 비난하면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총리 올라 “승자의 정의” 주장
도쿄 재판에서 중국과 필리핀은 물론 미국의 어떤 정치인도 일본 전범 처벌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도조 등에 대해 긴 재판을 벌이지 말고 약식 처형을 하라는 목소리가 컸다. 나아가 전후 일본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 전범들을 축출하고 불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도쿄 재판의 영향으로 일본인들이 군국주의 전시 지도부에 대해 반대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난징 대학살 증거가 재판에 제시된 뒤 일본의 대표적 신문이 “일본 제국주의의 악”과 “군국주의 일파의 야만주의가 낳은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죄악”이라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도쿄 재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75년이 지난 지금 도쿄 재판은 아시아에서 전쟁에 대한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으로 비쳐지며 나아가 아시아에서 새로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현재의 혼란을 태동시킨 것으로 간주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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