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기증으로 마지막 봉사"...의령 '봉사왕' 공도연 할머니 별세
박정희 전 대통령~문재인 정부까지 표창 60회...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아이뉴스24 임승제 기자] "저희 집은 복판 가운데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하는 게 사방에서 다 보이는데 일일이 모두 다 보살피지 못해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2002. 11.12. 봉사 일기 중)
평생 나눔을 실천해 온 경상남도 의령군 '봉사왕'이라고 불렸던 공도연(82) 할머니가 생전에 남긴 일기장에 기록돼 있는 내용의 한 구절이다.
한눈에 봐도 생전 할머니의 평소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 오던 할머니가 1999년부터 써 내려온 '봉사일기' 한 권만을 남겨두고 노환으로 쓸쓸히 우리 곁을 떠났다.
의령군은 지난 20일 공도연 할머니가 향년 82세로 지난 9월 별세했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에 사는 자제들이 장례를 치루는 통에 장례식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공 할머니는 반세기 동안 이웃 사랑 실천으로 지역에선 '봉사왕'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런 그였기에 떠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시신까지 기증하며 '마지막 봉사'를 하고 작별했다.
가족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할머니 시신을 경상국립대학교 의대에 기증해 해부학 연구를 위한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지난해 먼저 운명을 달리한 남편 고(故) 박효진 할아버지 시신 역시 같은 용도로 쓰이게 돼 부부는 현재 병원 냉동고에서 마지막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할머니의 봉사 인생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모든 정부로부터 표창만 60번 넘게 받았다. 2020년에는 사회 공헌과 모범 노인 자격으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가난의 설움'이 할머니를 봉사왕으로 만들었다. 17살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한 공 할머니는 이웃에게 밥 동냥을 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공 할머니는 생전 일기에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잘살아 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썼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낮에는 남의 집 밭일과 봇짐 장사를 하고, 밤에는 뜨개질을 떠 내다 팔았다.
그렇게 알뜰히 모은 돈으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1000평의 논을 사들여 벼농사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형편이 나아진 30대부터는 본격적인 사회 활동에 나섰다. 새마을 부녀회장으로 마을 주민들을 독려해 농한기 소득 증대 사업에 매진했다.
사비를 들여 마을 간이상수도 설치비와 지붕개량 사업을 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으로 1976년에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건립했다.
1985년에는 주민들이 의료 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지 225㎡를 매입, 의령군에 기탁해 송산보건진료소를 건립할 수 있게 도왔다.
50년 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지원, 불우이웃 돕기 성금 기부, 각종 단체에 쌀 등 물품 기탁 등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돈을 선뜻 내놓았다.
부랑자나 거지를 길에서 만나고 이웃에 누군가 궁핍한 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쌈짓돈과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아낌없이 챙겨 주변 사람을 도왔다.
또 노령층을 대상으로 틈날 때마다 이들을 방문해 청소는 물론 말동무가 돼 음식을 대접했고 '후손에게 오염된 세상을 물러줘서는 안 된다'는 생활 신조를 바탕으로 동네 환경 정화 활동에 솔선수범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다수의 사회 단체장을 맡아 동네 여성들에게 한글을 깨우치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수십년간 빼곡히 적혀있는 봉사 일기가 증명하듯 할머니 봉사 활동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80세 되는 해 35kg의 몸으로 리어카를 끌면서 나물을 팔고 고물을 주어 번 돈으로 기부를 했다.
평생 남을 위해 헌신한 삶을 살고 죽어서까지 '시신 기증'이라는 마지막 봉사 활동을 하고 공 할머니는 세상과 그렇게 마지막 작별했다.
장남인 박해곤(63) 씨는 "발인을 못 해 자식으로 마음이 안 좋지만, 이것도 어머니의 뜻이었다"며 "차가운 병원에 누워 계시지만 아버지와 같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딸 박은숙(61) 씨는 "봉사는 엄마의 삶의 낙이었다. 일찍부터 마음 그릇이 컸다. 해부학 연구가 끝나고 선산에 어서 모셔 큰절을 올리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공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늦게 접한 군민들은 "저 세상으로 가시면서도 큰일을 하시는 진정한 어른이다", "군민 대상을 천 번 받아도 모자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의령=임승제 기자(isj2013@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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