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연구도, 오염수 홍보도 거부한 일본학술회의···75년만에 ‘법인화’ 위기

박용하 기자 2023. 12. 2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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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학술기관으로 전쟁 목적의 과학 연구를 반대해온 ‘일본학술회의’(SCJ)가 설립 75년만에 법인화의 기로에 놓였다. 일본 정부는 운영의 독립성을 이유로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같은 방안이 현실화되면 오히려 중립성이나 재정 확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1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SCJ의 조직 개편을 논의해 온 내각의 ‘유식자(전문가) 간담회’는 이날 SCJ를 정부에서 분리해 법인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중간보고서를 정리했다. SCJ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 각 분야 연구자들이 모인 단체로 연구협력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사안에 정책적 조언을 하고 있다. 1949년 설립될 당시부터 총리 관할로 운영됐다.

일본 정부가 SCJ의 법인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이 기관의 운영 방식을 두고 이어져 온 정치권과 학계의 신경전이 있다. SCJ는 210명의 회원을 선출할 때 현 회원이 차기 회원을 추천하고 내부 회의를 통해 후보자를 선정하면 총리가 임명하는 관행을 가졌는데, 정부는 이같은 방식이 폐쇄적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바꾸려고 시도해왔다. 하지만 SCJ 측은 선출 방식이 바뀌면 정부가 원하는 인사들이 임명돼 독립성이 훼손된다며 반대했고, 정부는 “개정안이 싫으면 법인화밖에 길이 없다”며 압박해왔다.

일본 정부가 SCJ의 운영 방식을 바꾸려는 배경에는 ‘군사력 강화’에 대한 갈등이 작용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SCJ는 과거 전쟁에 협력한 연구자들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세워진 기관이며, 2017년에는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의 연구는 절대 실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이는 군사력 강화를 위한 민관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일본 정부에게는 불편한 행보였다.

SCJ는 최근 일본 정부가 결정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와 관련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중국 등이 오염수를 ‘핵오염수’라 부르며 적극적으로 비판하는데, 정부 학술기관이 과학을 바탕으로 일본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전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SCJ의 법인화가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운영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방안들이 있음에도 정부가 법인화를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관의 독립성 담보에 실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SCJ가 자체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등 재정 기반을 다양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면 SCJ가 특정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정말 중립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인지를 두고 SCJ 내부에서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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