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불행하다는 얘기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 편에서
2023년 12월19일 오전 출판사 ‘연립서가’를 운영하는 미술사학자이자 번역자 최재혁씨로부터 재일동포 작가 서경식 선생(향년 72)이 타계했다는 전화를 받기 직전, 나는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 작품 현장을 탐방하고 연구하기 위해 일본 간사이 지역 동선을 짜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당신의 부음을 전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멍한 기운과 함께 어찌할 바 모를 것 같은 순간적인 공황 상태에 처했다. 그건 통절한 슬픔보다는 망연자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던 어떤 견고한 정신, 늘 영감과 깊은 여운을 제공하던 인간 도서관이 일순간 세상에서 사라진 느낌이었다.
전화받고 서재를 서성거리다 서경식의 저서들이 모여 있는 서가를 응시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마도 그토록 예리하면서 아름답고 품격 있는 그의 새로운 글을 이제 영원히 접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으리라. 적어도 나에겐 서경식의 육성과 치열한 문제의식, 담백하면서도 생생한 글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참 쓸쓸하고 허망하다. 아마도 나는 서경식의 글을 오랜 세월 동안 아끼고 사랑해왔던 것 같다. 그의 글을 읽을 때처럼 가슴 설레던 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불가 상실감을 실감케 하는 고인의 문장들
대개의 독자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나의 서양미술 순례>(한국어판 1992)에서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서경식의 저작에 탐닉했다. 2006년 숙명여대에서 시작된 그와의 사귐은 내게 오롯한 충만감과 동지적 우정을 선사한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런 배움과 인연 때문이었을까. 서경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 그가 재직하던 일본 도쿄경제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6개월간 지내기도 했다.
서경식의 에세이는 주로 사적인 일상이나 가벼운 내용으로 채워진 수필이나 에세이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 감성을 펼쳐 보였다. 그의 에세이에는 역사와 동시대 현실에 대한 첨예한 사유와 둔중한 성찰이 그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기에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그의 부음을 접한 심경을 “그의 문필생활은 대체 불가의 상실감으로 가슴을 메게 한다”(2023년 12월19일 페이스북)고 적지 않았을까. 그런 상실감을 실감하게 하는 문장 몇 개를 이곳에 소개하고 싶다.
우리는 “거대담론에 의지할 수 없는 시대에 외로움이나 불안은 존엄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대가인 것이다”(<한겨레> 2008년 3월14일)라는 문장을 통해, 우울하고 불안한 경쟁사회를 헤쳐가는 지혜와 자존을 터득할 수 있었다.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가 <펜과 칼>에서 천명한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진실을 말하려는 의지”를 인용하며 패배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태도를 역설하는 서경식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 역시 조금이라도 용기와 힘을 낼 수 있었지 싶다. 그런가 하면 “성장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자부심과 열등감, 희망과 실의가 격렬하게 교차하던 그 나날들”(<소년의 눈물>)이라고 표현되는 서경식의 소년 시절은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공감대를 선사했던가. 30대 중반을 넘은 그가 “내가 너무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그래도 이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청춘의 사신>)고 고백할 때 우리는 얼마나 절절한 위로를 얻었던가.
“엄혹한 시대, 얼굴 들고 진실을 계속 얘기하자”
이렇게 마음을 관통한 구절구절을 새삼 다시 읽어보니, 서경식과 동시대를 호흡하며 살아왔다는 사실, 그의 절망과 희망을 마음 깊은 곳에서 공유하며 연대(連帶)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축복이자 위안이었다.
“엄혹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얼굴을 들고, ‘진실’을 계속 얘기하자.”(<한겨레> 2023년 7월6일) 이 우울한 퇴행의 시대에, 서경식이 한국 독자에게 건넨 마지막 전언은 그의 글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어떤 다짐과 결의의 순간을 만들기도 할 것이다.
늘 희망과 낙관보다는 깊은 비관과 절망을 응시하던 그의 정직한 태도에서 외려 용기를 얻고 희망으로 향하는 등불을 발견한 사람이 많았다. “저는 불행하게 살다가, 불행하다는 얘기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쪽에 서고 싶습니다”(2015년 8월17일의 대화)라고 얘기하던 서경식의 태도와 시좌(視座)는 소수자라는 의식조차 가질 수 없었던 수많은 소외된 사람의 마음에 곡진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의 육체는 이 지상에서 사라졌지만, 끊임없이 진실을 얘기하고, 정의를 희구하며 더 살 만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늘 고민하고 사유했던 서경식의 정신을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이제 서경식의 정신적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면서, 이 시대의 현실에 대처할 것인가? 바로 이 문제는 살아 있는 우리의 몫이다. 그는 저세상에서 때로는 미소 띤 얼굴로, 때로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세상에 남은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 고투와 상처, 지혜와 어리석음을 응시하리라.
서경식이 태어나 방황했던 교토 골목을 걸으며
나는 수많은 재일 한인이 새로운 험난한 인생의 닻을 내렸던 오사카, 때로 밀항과 도피를 위한 공간이었던 오사카의 한 숙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레 12월23일에는 서경식이 태어나 유년과 십 대 시절을 보내며 방황했던 교토의 거리와 골목을 그의 인생을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보려 한다. 그러면 오늘(12월21일)까지 나가노 신슈 자택에 모셔져 있을 그의 마지막 육체와 영혼에 예를 갖추지 못한 안타까운 심정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경식 선생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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