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반군의 홍해 상선 공격에도 유가는 왜 잠잠할까? [특파원 리포트]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가는 상선들을 공격하면서 유가와 다른 상품 가격을 끌어올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와 연결된 홍해를 통해 전 세계 해상 교역의 14%가량이 움직입니다.
홍해가 막히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선박 항로인 수에즈 운하를 지나지 못합니다. 대신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야 합니다. 수에즈 운하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용되던 항로입니다. 배가 멀리 돌아가면 비용이 상승하고, 물가를 자극하게 될 거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럼 지금 후티 반군의 공격은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 홍해는 얼마나 중요한 교역로일까?
홍해를 통한 교역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컨테이너는 30%, 에너지는 15% 정도가 움직입니다. 특히 에너지 측면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더 중요해졌습니다. 유럽과 러시아의 가스관이 막히고,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결과입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의 수출이 막히면서 생산한 원유와 가스를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로 보내고 있습니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던 에너지를 중동에서 들여옵니다. 자연스레 홍해를 오가는 에너지 물동량이 늘었습니다.
블룸버그가 유조선을 추적해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의 원유는 하루 12만 배럴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수출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6개월 동안엔 하루 170만 배럴로 급등했습니다. 같은 기간 중동에서 유럽으로 가던 원유 수송은 하루 87만 배럴에서 백30만 배럴로 늘었습니다.
세계 교역을 분석하는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휘발유나 경유 등 정제유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물동량이 같은 기간 하루 120만 배럴에서 230만 배럴로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면 얼마나 더 걸릴까?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게 되면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더 걸립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든 예를 보면 유럽의 주요 항구인 네덜라드 로테르담으로부터 싱가포르까지 수에즈 운하를 통하면 8천3백 해리의 거리로, 34일 만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대신 희망봉을 거쳐 가면 만 천7백 해리로 43일이 걸립니다. 거리상으로 3천4백 해리, 시간으로는 9일이 더 소요됩니다.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길어지면 원가 측면에선 당연히 해상 운임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료도 더 들고, 선박 운용 비용, 임금, 보험료 등도 더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해상 운임이 급등했고, 물가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홍해가 막히면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도 세계 컨테이너 교역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머스크사와, 세계 2위의 석유회사인 BP가 홍해를 포기하고 희망봉으로 돌아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컨테이너 운송 비용은 얼마나 올랐을까?
후티 반군의 공격을 전후한 컨테이너 운송 비용은 실제로 올랐습니다. 해상 운송 컨설팅 회사의 드류리(Drewry)의 수치를 보면 세계컨테이너지수(World Container Index)는 40피트 컨테이너 한 개를 기준으로 11월 30일 천382달러에서 12월 21일 천661달러가 됐습니다. 20% 정도 올랐습니다.
그러면 홍해를 통과하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운임은 얼마나 올랐을까요? 중국 상하이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의 운임은 같은 기준으로 천171달러에서 천667달러가 됐습니다. 40% 넘게 올랐습니다. 상하이에서 미국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홍해를 통하지 않는 운임도 올랐지만, 아시아와 유럽 노선이 많이 오른 게 사실입니다.
다만 해상 운임은 실제 원가도 중요하지만, 수요와 공급에 따라 비용이 크게 출렁입니다. 최근 올랐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물류가 막혔을 때에 비하면 10%를 약간 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중국의 교역량이 줄고 있는 영향도 있습니다. 아직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겁니다.
■ 그럼 유가는 어떨까?
세계 원유 가격의 지표가 되는 브렌트유 가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후티 반군의 홍해 상선 공격이 이달 3일에 시작됐는데, 브렌트유 가격은 12월 1일과 12월 4일 사이 오히려 소폭 내렸습니다. 최근 장중 1배럴에 80달러 선을 넘기도 했지만 73달러 선까지 내려간 적도 있습니다.
중동, 특히 원유 생산국이나 호르무즈 해협처럼 주요 교역로가 불안해졌을 때 발작적으로 움직이던 유가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세계적으로 현재 원유는 공급이 많은 편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 OPEC의 감산에도 그렇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OPEC이 추가 감산을 밝혔는데도 유가가 오르지 않은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종전보다 하루 백만 배럴을 추가 생산하고 있고, 가이아나와 브라질도 기록적인 양의 석유를 생산하고 있고, 이란의 원유 수출도 늘었습니다.
또 홍해가 폐쇄되더라도 유조선의 항해 기간이 길어지지만, 생산량 자체가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후티 반군이 공격을 행하고 있는 곳의 지리적 특징 역시 이런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후티 반군이 공격하고 있는 곳은 홍해 남쪽 끝의 해협인데, 사우디아라비아가 홍해 쪽으로 수출하는 석유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걸프만 쪽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스 분야 역시 유럽 등 여러 국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처럼 충격을 받았던 것을 피하기 위해 미리 비축해 둔 측면이 있습니다. 운송이 끊기지만 않으면 고비를 넘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 파나마 운하에는 가뭄이...
해상 운송에서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중요한 곳이 파나마 운하입니다.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오가는 통로인데, 세계 해상 무역의 6%를 차지합니다. 우기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서 파나마 운하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파나마 운하를 통해서는 하루 평균 약 40척의 선박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 통과 가능한 선박 수가 계속 줄고 있고, 내년에는 더 줄어듭니다. 이 길이 막히면 육상 운송을 택하거나 남아메리카 대륙 남단을 통과하거나,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야 합니다. 역시 비용이 더 듭니다. 운송료 상승이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 그럼 물가는?
앞서 보셨듯이 아직까지 물가를 자극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선박 운송료는 해당 품목의 물가 가운데 일부를 차지하기 때문에 선박 운송료가 오른 만큼 제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홍해 위기는 아직 초기입니다. 일부 유조선사들은 몇 달 안에 수에즈 운하가 다시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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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중 기자 (baika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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