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페북 글’ 베끼다 벌금 1000만원… 대법 “인격권 침해”

방극렬 기자 2023. 12. 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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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뉴스1

다른 사람의 글 수십 편을 베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고, 자기가 쓴 척 하다가 적발된 사람에게 대법원에서 벌금 1000만원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남의 글을 훔치는 행위가 원 작성자의 사회적 평판 등 인격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최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자신의 글을 도둑맞은 사건의 피해자는 기계항공 공학 박사 B씨다. B씨는 2011년부터 3년 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음악, 미술, 역사, 문학, 공학 등 여러 분야의 주제에 대해 공학 박사로서의 식견과 경험을 담은 수필 형식의 글을 썼다. 공학 전문가로 인정받던 B씨는 학회 저널에 과학 관련 기고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A씨는 B씨의 글을 보던 ‘페이스북 친구’(페친) 중 한 명이었다. 그는 B씨가 쓴 글을 복사하고, 저널에 기고한 글도 따로 확보를 했다. 그러다 B씨가 2014년 페이스북 계정을 닫자, A씨는 이듬해인 2015년 3월부터 보관해둔 글을 직접 쓴 것처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A씨는 자신의 이름을 달고 B씨의 글을 올렸고, 일부 내용이나 구성을 임의로 바꾸기도 했다. A씨가 베낀 글에 그의 ‘페친’들은 “항상 박식한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하신 필력과 입체적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등의 칭찬하는 댓글을 달았다. A씨는 “과분한 칭찬입니다”, “쑥쓰럽습니다”라고 답글을 달았다. A씨는 3년 6개월간 B씨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47차례 게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가 저작권법에서 금지하는 ‘저작물 무단 복제’, ‘저작자 허위 표시’, ‘저작 인격권 침해’ 등 총 3개의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지난 2019년 5월 기소했다. B씨의 글을 동의 없이 베끼고, 자신의 글인 것처럼 행세해 B씨의 명예가 훼손되고 인격권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1심은 ‘무단 복제’와 ‘저작자 허위 표시’는 유죄로 봤지만, ‘저작 인격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인격권 침해까지 유죄로 인정하며 벌금을 1000만원으로 높였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이 타당하다고 보고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B씨는 전문 지식 등을 바탕으로 페이스북이나 저널에 다수의 글을 게재하면서 자신의 학식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한 긍정적인 평판을 누리고 있었다”면서 “A씨는 B씨의 저작물을 이용해 자신도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상당한 식견이 있는 사람처럼 행세하고자 저작 인격권 침해 행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A씨가 게시한 저작물은 마치 A씨의 저작물처럼 인식될 수 있어, B씨로서는 진정한 저작자가 맞는지, 기존에 저작물을 통해 얻은 사회적 평판이 과연 정당하게 형성된 것인지 의심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면서 “B씨의 전문성이나 식견 등에 대한 신망이 저하될 위험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B씨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는 상태를 야기해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저작 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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