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살며 생각하며]
저작권에 캐럴 듣기도 힘들어
사랑의 온도탑·자선냄비 썰렁
록펠러센터의 트리 점등 행사
매년 인파 몰리는 ‘빅 이벤트’
오 헨리의 소설 ‘…선물’ 떠올라
서로 나누는 마음 있으면 좋겠다
아파트 중앙분수대에 트리가 등장했다. 정확히 말하면 트리가 아니라 분수대 주변을 크리스마스 장식 전구로 불을 밝힌 것이다. 하려거든 좀 더 일찍 했으면 좋았으련만.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이제야 만들다니…. 분수대 중앙의 조각상을 중심으로 주변 원형의 울타리를 연결해 걸어 놓은 전구들은 듬성듬성한 데다 어딘지 허술해 보였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크리스마스이므로.
그러잖아도 언제부턴가 체증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는데, 그 장식을 보니 뭔가 안에서 불을 지핀 듯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느낌도 좋았다. 밤이 되면 깜북깜북 혹한의 추위 속에서 저들끼리 불을 밝히는 그 전구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들 같다. 힘내. 그렇게 견디며 사는 거야. 그 별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 잘 산다는 게 이런 거 아니겠는가.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서 위로를 찾으며 사는 거.
처음에는 너무 소박하고 빈약해 아쉬웠지만 매일 보니 차라리 화려하고 휘황한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므로.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났고, 가장 낮은 자들을 택해 일을 했으며, 나눔과 사랑과 평화를 강조했으므로.
정말 다들 어려운 모양이다. 여느 해 같으면 다양한 장식의 트리들이 뽐내듯 가게 앞에 수문장처럼 나와 있었을 텐데. 주인의 취향 따라 그 트리들은 저마다의 모양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을 텐데. 그 트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설레었고, 마음이 밝아졌었다. 그렇구나, 벌써 크리스마스구나. 이제 연말이구나. 그 트리는 다가올 새해를 앞두고 새로운 각오와 꿈을 갖게 해주었다.
한데, 올해는 그런 트리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있다 해도 예전만큼 화려하거나 크지가 않다. 다들 소박하면서도 앙증맞다. 그만큼 살기가 팍팍하다는 방증인 것이다. 기실 이럴 때일수록 위로가 필요한데.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줄 그 무언가가 필요한데.
옛날 잠깐 한 방송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웠고 사회 분위기 또한 무겁고 어두웠다. 그런 까닭에 매일 아침 간부들만 참여하는 편성회의 때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캐럴을 내보냄으로써 경기를 부양시키고, 소비심리를 띄우라는 권고안이 나왔다. 그 기획에 따라 11월이 되자마자 방송사에서는 계속해서 캐럴을 내보내기 시작했고, 그 영향 때문인지 거리에서도 캐럴이 들려왔다.
그때의 크리스마스는 꽤 낭만적이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은 직접 그린 카드를 거리로 들고나와 팔아서 짭짤한 수입을 올렸고, 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실을 팔기도 했다. 문구 용품이나 각종 장식품을 파는 팬시점에서는 매대마다 선물용품들을 가득 쌓아 놓고 행인들을 유혹했다. 또, 가게들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서 캐럴을 틀었고 거리는 구세군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로 넘쳐났다. 귀와 눈이 즐거웠고 덩달아 마음도 설?다. 꼭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그런데 지금은 캐럴을 듣기도 힘들다. 저작권에 걸리고, 소음을 규제하다 보니 캐럴이 사라진 탓이다. 캐럴이 사라진 크리스마스는 왠지 삭막하고, 흥겹지 않고 또 설레지도 않는다. 그래선지 사랑의 온도탑도 사람들의 무관심에 좀처럼 온도를 높이지 못하고 꽁꽁 얼어붙어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 역시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옛날에는 부모와 함께 나온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부금을 넣기도 했었는데. 그나마 가끔 익명이나 남모르게 두고 가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우리에게 온정이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하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어디든 같은 모양이다. 산타클로스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장의 매출이 예전 같지 못하다고 하니 힘들고 어려운 것은 전 지구적인 일인 듯싶다. 하긴 왜 그러지 않겠는가. 어느 쪽에서는 전쟁이 한창이고, 기상이변이나 지진과 같은 재난재해로 다들 시름을 겪고 있는데. 세상이 뒤숭숭한데.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미국 뉴욕의 맨해튼 그 심장부에서는 올해도 대형 트리가 등장했고, 불을 밝혔다.
트리로 사용될 나무가 벌목되어 차에 실려 운송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SNS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안심했고, 조금은 부러웠다. 세상은 여전히 예전처럼 잘 흘러가고 있구나, 변함없구나 하고 안도하게 해주었다. 이름하여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트리’ 그 트리가 불을 밝히는 순간을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찾는다니, 이제 그 점등의 행사는 새해맞이 행사와 함께 하나의 이벤트가 되었다.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트리의 빛나는 그 수십만 개의 전구는 우주에 떠 있는 제임스웹 망원경이 보내온 그곳의 별빛들과 같다.
오 헨리의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난다. 가난한 부부인 짐과 델라의 이야기인데, 짐은 평소 자신의 자랑거리인 시계를 팔아 델라에게 줄 머리빗을 사고, 델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팔아 짐에게 줄 시곗줄을 산다. 짐과 델라에게 가장 값진 것은 시계도 머리카락도 아니고 서로인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그 따듯함이 있는 한 그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도 능히 헤쳐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더불어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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