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현지 남성 성추행 6년 만에 기소된 전 외교관 "툭 친 것 일부 인정"

첫 재판서 혐의 일부 부인, "상해는 인정 못해"

외교부 청사. 한국일보 자료 사진

2017년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현지인 남성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6년 만에 재판에 넘겨진 전직 외교관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일부 부인했다.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외교부 공무원 A(58)씨의 변호인은 22일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정아)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엉덩이와 배를 툭 친 사실은 인정한다"며 "피고인이 피해자 가슴을 한 차례 툭 친 것도 인정하나 다른 공소사실은 부인한다.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됐는데, 상해와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피해자와) 원만한 상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과하는 이메일도 보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2017년 11, 12월 3차례에 걸쳐 뉴질랜드 국적 남자 행정 직원 B씨의 가슴과 엉덩이, 배, 특정 부위를 강제로 만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상해를 입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법정에 나온 A씨는 직업을 묻는 김 부장판사에게 "공무원"이라고 답했다. 그는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피해자 B씨는 2019년 7월 뉴질랜드 경찰에 A씨를 고소했으나 이미 A씨가 2018년 2월 임기 만료로 뉴질랜드를 떠난 뒤여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고소 7개월 만인 2020년 2월 뉴질랜드 법원이 A씨의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사건이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번졌다. 그해 7월 당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외교부의 기강 해이와 대사관의 사건 대응 미흡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2019년 2월 A씨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던 외교부는 양국 정상 간 전화 통화가 이뤄진 직후인 2020년 8월 당시 필리핀에서 근무하던 A씨를 국내로 불러들였다. 이 사건은 뉴질랜드 경찰이 2020년 12월 양국 간 형사사법 공조와 범죄인 인도 조약 등 공식 사법 절차에 따른 A씨 신병 인도 등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A씨에 대한 형사 처벌도 무산되는 듯했으나 피해자 B씨가 지난해 말 한국에 들어와 A씨를 서울경찰청에 직접 고소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신체 접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단순 장난이었다"고 혐의를 부인했으나 경찰은 강제추행죄를 적용해 지난 6월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A씨 거주지를 고려해 사건은 부천지청으로 이송됐고 사건을 넘겨받은 부천지청은 피해자 B씨가 피해를 입은 뒤 PTSD 진단을 받아 오랫동안 치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법리 검토를 거쳐 강제추행치상죄로 기소했다.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10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지만 강제추행치상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더 엄한 처벌이 가능하다. 피해자 B씨는 다음 재판에 증인으로 직접 출석할 예정이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