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피플] 벼랑 끝에서 K리그 득점왕까지, 주민규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김태석 기자 2023. 12. 2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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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빠툼타니/태국)

▲ 피치 피플

울산현대
FW
주민규

목표로 하던 프로 문 앞에서 선택을 받지 못한 한 선수가 있다. 축구를 처음 시작하면서 품었던 꿈이 냉혹한 현실 앞에 무너지는 경험,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 순간 모든 걸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더 이를 악물었던 선수가 있다. 번외 지명 연습생이라는 기회를 어렵사리 잡은 그는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조금씩 레벨업을 하더니, 지금은 K리그를 대표하는 골잡이가 되어 울산 HD FC와 정상을 맛봤다.

하나원큐 K리그1 2023 득점왕(17골)과 K리그 우승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주민규의 커리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지금이야 골잡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러나 주민규가 본래 벼랑 끝에 서 있던 선수였다는 걸 기억하는 이는 이제 많지 않다. 그는 어떻게 해서 위기에서 벗어나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지난 11월 26일 AFC 챔피언스리그 BG 빠툼 유나이티드 원정을 위해 태국에 머물었던 주민규와 그 시절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어린 주민규는 이제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응원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구가하고 있다.

"희생하는 가족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Q. K리그 첫 번째 우승이다. 울산에 돌아왔을 때 바로 이걸 원해서 돌아왔을텐데
"제겐 굉장히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1년 동안 어떻게 해야 우승할 수 있는지 그런 경험들이 제겐 인생을 살아가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겐 정말 뜻 깊은 한 해인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한 시즌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10년 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했었다. 지금 이 위치에 올 거라 생각했는지?
"절대 생각 못했죠. 사실 드래프트가 안 되고 나서 군대를 어떻게 해결할까 그것부터 생각했죠. 일단은 군대를 먼저 가야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Q. K리그 득점왕에 우승까지, 주민규 선수의 성공 사례는 커리어 위기에 놓인 어린 후배들에게 굉장히 귀감이 되는데
"저는 가족들 때문에 축구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나 동생들이 저만 바라보고 뒷바라지해주고 희생하는데,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했다고 좌절하기에는 그런 희생들이 먼저 생각나서 뭔가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한다는 마음을 먹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족들이 저를 위해 희생한 걸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었거든요."

Q. 가끔 비슷한 위치에 놓였던 후배들도 만날텐데 어떤 얘기를 해주는가?
"돌이켜 보면 이런 얘기도 한동안 못했어요. 왜냐하면 저부터 잘해놓고 난 다음에 얘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제가 뭔데 누구한테 얘기를 해주나 이런 생각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조금씩 개인적 성과를 내다 보니까 그때부터 저도 안타까운 위치에 있는 친구들에게 조금씩 손이 가고 얘기를 주고 받게 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한살 나이를 먹으면서 그래도 열심히 살았구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보다 더 힘든 친구들도 물론 있겠죠. 그런데 제 경우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위치에서 노력했습니다. 그냥 인내를 한 것이죠. 인내하라는 조언은 해줄 수 있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인내하고 기다려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인내하면서도 노력을 정말 많이 했으니까."

"쉬고 있을 때도 저는 부단히 남몰래 운동했어요. 그래야 제가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게 되니까요. 어찌 보면 운동이 제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방법이었던 것 같네요. 그러다 보니까 자신감도 쌓이고, 제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고 좋은 선수들을 만나다보니까 노력이 운으로 조금씩 바뀌고 점점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린 친구들에게는 '지금 환경이 가장 좋은 환경'아라고 항상 얘기해요. 운동만 하기엔 정말 좋은 환경인데, 다른 거에 신경 쓰지 말고 정말 노력하고 겸손해야 한다. 무조건 버티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힘들었던 경쟁자는 조규성, 우승은 울산 팬들이 있었기에

Q. 과거 울산에서 뛸 때와 지금 울산에서 뛸 때는 무엇이 차이가 있을까?
"2019년에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사실 주변에서 그렇게 많이 기대를 안 하셨어요. 상무에서 검증받고 왔다고 하지만, 이제는 우승을 경쟁하는 팀에서 저를 부르셔서 크게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는 주니오라는 정말 대단한 선수가 있어서 경기 출전도 못하고 힘든 시간도 보냈습니다."

"올해는 좀 달랐습니다. 제주에서 뛰며 K리그1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을 정도로 골도 많이 넣으니 이제는 울산 팬들이나 주변 동료들, 프런트 등 모든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해주셨으니까요. 때론 제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어요. 왜냐하면 이 팀은 우승도 했고, 제가 입단한 후에 우승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부담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그 압박감을 이기고 우승까지 하니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Q. 돌이켜 보면 주민규 선수는 직접 언급한 주니오를 비롯해 조나탄·조규성 등 타 팀의 우수한 골잡이들과 늘 경쟁해왔다. 
"그들은 제가 쉴 수 없게 하는 동기 부요 요소였어요. 좋은 선수와 경쟁하면서 정말 많이 배운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저는 타고 난 인복이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좋은 경쟁자들과 만났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하죠. 그들의 장점을 공부하고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마틴 아담이라는 장점이 뚜렷한 선수가 있고, 김천 상무에서 전역하고 돌아온 김지현 역시 굉장히 좋은 선수에요."

Q. 그중 가장 경쟁하기 힘들었던 선수 한 명을 꼽을 수 있을까?
"저는 전북 현대에서 뛰던 조규성 선수를 꼽고 싶어요. 지난해 득점왕 경쟁을 하면서 마지막 경기 때 제가 두 골을 앞서 있었거든요. 그러네 조규성 선수의 경기를 보면 정말 잘하더라고요. 골도 잘 넣고. 추격에서 벗어날 것 같으면 또 따라오고, 매 경기 볼 때마다 실력이 는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 선수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조규성 선수가 득점왕이 됐을 때 선선히 '받을 만하지'라고 저도 인정하게 됐어요.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도 먹었고요."

Q. 울산 팬들과 멋진 시즌을 보냈다. 우승에 기여한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팬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항상 감사한 분들이죠. 정말 감사하고, 이전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 때도 정말 추웠는데도 그렇게 많이 팬들이 응원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아, 이 팀에서 경기를 뛰는 게 정말 감사하다'라는 걸 느끼게 됐으니까요. 저희 홈 경기 와보셔서 아시겠지만, 팬들이 응원해주시면 심장이 막 뜁니다. 경기를 하면서 제 안에 있는 모든 아드레날린을 날릴 수 있는 건 바로 팬들 덕분이에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올해 우승도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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