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 박사의 호르몬 미술관] 아름다운 꽃의 무게
꽃의 의미는 그 꽃의 종류에 따라, 꽃을 주고받는 관계에 따라 달라지지요. 유명한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진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꽃 노점상〉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우리는 꽃을 선물하여 따뜻한 정을 전하고 사랑을 표현하곤 하죠. 그렇기에 꽃은 아름다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꽃 노점상〉의 샛노란 꽃이 가득한 바구니는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꽃에서 재물, 명예, 권력 같은 속물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꽃바구니를 짊어진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이 고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림에 드러난 바구니에 담긴 꽃은 갓 피어난 듯이 환하게 빛나고 있지만, 과연 그림 속 인물에게도 이 꽃이 아름다울까요?
전혀 아닐 것 같아요. 아마도 저 꽃을 다 팔아야 오늘 밤에 빵 한 조각이라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이 노란 꽃의 이름은 ‘칼라(calla)’입니다.
칼라는 왕비처럼 우아하고 자기중심적인 꽃입니다. 커다란 꽃잎이 꽃술을 두툼하게 감싸고 있어 어디에 놓아도 존재감이 크죠. 꽃다발을 꾸릴 때 항상 중심에 놓입니다. 결혼식 날,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인 신부의 손에 들리는 꽃이 바로 칼라입니다.
이렇듯 한 송이만으로도 굉장히 고고하고 아름다운 칼라가 그림엔 이렇게 수북합니다. 압도적인 느낌조차 줍니다. 누구든 화려하고 강한 칼라에게 시선을 먼저 빼앗기고 말지만, 조금 지나면 꽃에서 시선을 돌려 꽃바구니를 짊어진 여인에게 비로소 집중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꽃을 팔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돈을 벌려고 꽃을 파는 여인에게 꽃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보이지 않고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움으로 느껴질 겁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보입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여인은 바구니 아래 깔렸을지도 모르죠. 이렇듯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모든 일에는 노동의 고충이 숨어 있습니다.
남들은 겉만 보고 부러워하는 위치라도 정작 자신은 온갖 부담과 걱정거리에 짓눌리는 순간이 있지요. 이 그림은 그럴 때의 외로움을 묵묵히 달래주는 그림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명예와 권력과 재물도 공수래공수거 인생에는 버거운 짐이겠죠.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모두 덧없다고 이야기한다면, 심지어 우리가 한 발씩 나아가는 과정이 고된 노동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제가 너무 허무주의자가 되는 걸까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도파민 디톡스’라는 캠페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인이 향유하는 중독성 생활들, 가령 텔레비전 시청, 소셜미디어, 쇼핑, 커피, 과당 음식 섭취, 음란물 시청 등을 일절 금하는 캠페인입니다.
도파민 디톡스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대인들이 도파민을 분비하는 인위적인 자극을 좇고 중독에 빠진 탓에 인생의 목표나 대인관계를 소홀히 하게 된다”고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그들은 도파민 디톡스를 ‘삶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라고 표현합니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야 도파민 균형을 되찾을 수 있고 자기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도파민은 해로운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죠. 오히려 인간이 목표를 정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유용한 물질이라는 겁니다.
또한 도파민을 단절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과거에는 중독을 치료하겠다고 도파민을 억제하는 약물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효과는 거의 없었다 하죠. 대신 행동과 사고가 둔해 지는 부작용만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도파민 디톡스’라는 극단적인 방식은 오히려 중독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도파민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일상에서 작은 실천을 통해 자기 통제감을 키워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게임이나 소셜미디어를 과도하게 이용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식사 시간에만 해야지’ 혹은 ‘주말에만 봐야지’ 하는 식으로 접촉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게 더 좋습니다.
어떤 행동이 정말로 중독 수준으로까지 심각해졌다고 느낀다면 도파민 디톡스를 하기에 앞서 전문가의 도움을 먼저 구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일상생활에서 도파민을 관리해줄 수 있는 몇 가지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알려드릴게요.
도파민 관리에 좋은 생활 습관으로는 ①등산, 계단 오르내리기 같이 중력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면 도파민 분비가 촉진됩니다. ②충분한 수면은 자연적인 도파민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밤에 취하는 숙면이 최고지요. ③한 시간 동안 명상을 하고 나니 도파민 분비량이 6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④햇빛은 도파민 분비에도 영향을 미치니 충분히 쬐어주는 게 좋습니다.
도파민 관리에 좋은 식습관은 ①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가운데 ‘티로신’과 ‘페닐알라닌’은 도파민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효소입니다. 따라서 소고기, 달걀, 유제품, 콩 등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는 게 좋겠죠. ②포화지방이 다량 함유된 식품은 줄이는 게 좋습니다. 포화지방이 도파민 신호 전달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③플라보노이드는 포도, 적포도주, 딸기, 블루베리, 체리, 녹차, 오렌지, 레몬, 자몽, 라임 등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성분입니다. 심장질환, 고혈압, 일부 암과 치매 등에 효과를 보이는데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플라보노이드가 많이 든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사람들은 도파민 분비가 촉진됩니다. ④몸에서 도파민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비타민과 미네랄이 필요합니다. 철분, 니아신, 엽산, 비타민B6 등이 있죠.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도파민 생산이 줄어들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혈액검사를 통해 어떤 영양소가 부족한지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영양제를 섭취하는 것입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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