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9] 띄엄띄엄 파업 중인 로마의 대중교통

여행작가 신양란 2023. 12. 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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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광장의 명물인 난파선 분수와 크리스마스 장식을 화려한 황금색으로 한 크리스찬 디오르 매장

[여행작가 신양란] 지난 14일 오후 6시경, 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방문은 초고 작업을 마친 책 <가고 싶다, 바티칸>의 자료 보완을 하고, 로마 관광명소 몇 군데를 비디오 가이드로 소개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로마 일정을 보름으로 잡았는데, 원하는 걸 다 해결하기에는 다소 짧은 기간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을 가슴에 새기며 부지런히 돌아다니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왔는데, 15일 아침부터 문제가 생겼다.

12월 15일 로마 대중교통의 파업 사실을 알려주는 공지. 그나마 세상이 참 좋아져 이런 정보를 한국어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로마 관련 정보를 검색하더니, “오늘 아침부터 로마 대중교통 파업이라는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8시 30분까지는 정상 운행을 하고, 그 이후부터는 파업에 돌입한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호텔비를 아끼기 위해 로마 외곽에 숙소를 잡았으므로 시내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간 다음, 다시 지하철로 환승하여 도심으로 나가야 한다.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이 파업을 한다면 하루를 하릴없이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황금보다 귀한 여행자의 시간을 그렇게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는 아침 식사도 포기한 채 부랴부랴 버스를 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타긴 탔는데, 이번에는 기계가 말썽이었다. 승차권을 대면 인식을 해야 하는데, 끝내 먹통이었다. 볼로냐에서 버스를 탔다가 제대로 인식이 안 되어 억울하게 50배 벌금을 문 적이 있는 터라 이탈리아에서는 승차권을 태그(혹은 펀칭) 하는데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인데, 버스 안 기계가 모두 먹통이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버스에서 내릴 수도 없는 일이라 배짱을 부리며 지하철 역까지 그냥 갔다. 혹시라도 검표원이 올라와 시비를 걸면 기계가 고장났다고 주장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안 생겼지만…….

운행 편수가 줄어들어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로마의 지하철

그날은 아침 일찍 서두른 덕에 포폴로 광장에 무사히 닿을 수 있었고, 스페인 광장까지는 걸어서 이동이 가능했으므로 약간 우왕좌왕은 있었지만 계획대로 하루 투어를 마칠 수 있었다. 저녁 때는 파업이 종료되었는지 시내버스와 지하철이 정상 운행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17일에 또 문제가 생겼다. 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20분 정도가 지나도록 단 한 대의 버스도 안 오는 것이다.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든 남편이 다시 검색을 하더니, “또 파업이고, 우리가 타야 할 버스는 9시 50분에 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때가 8시 30분 무렵이었는데 말이다.

하필 그날은 콜로세움 9시 50분 입장권을 예약해 놓은 상태라서 무작정 버스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택시라도 타려고 했지만 빈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버스 승강장 네 개 거리라 못 걸을 건 없었지만,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둘거리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자니 참 한심했다.

게다가 운행 편수가 줄어드니 버스고 지하철이고 미어터지는 상태가 되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호텔로 오는 만원 버스에서는 웬 청년의 손이 남편 재킷 호주머니로 쓰윽 들어오더라고 했다.

평소에는 승차권을 태그해야 투명한 문이 열리는데, 파업 중이라 출입구의 문을 열어놓은 지하철 역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업이라고 하여 모든 버스와 지하철이 운행을 중단하진 않고, 운행 편수를 줄이는 거라 불편하기는 해도 이동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았다. 파업 중에는 시민에게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는 의미에서인지, 요금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첫날 기계가 승차권을 인식하지 못해 당황했는데, 파업 중이라 기계의 작동을 막아놓은 것이었던가 보다. 지하철도 평소에는 승차권을 대야 문이 열리는 시스템인데, 파업하는 날은 다 열어놓고 있었다.

아무튼 갈 길 바쁜 여행자는 아침마다 ‘오늘도 파업하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예약한 입장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지하철 역까지 걸어간 다음 간신히 시간을 맞췄던 콜로세움
로마의 시내버스에 설치된 신형 기계. 승차권을 대면 인식해야 하는데, 파업하는 날에는 작동을 하지 않아 당황했다.
판테온을 찾아가다 만난 하드리아누스 신전 유적. 200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적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곳이 로마이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라서인지, 로마에서는 그와 관련된 이미지를 많이 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개선문 주변에 모여든 산타 복장의 시민들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카라바조가 마태의 일생을 주제로 그린 석 점의 그림이 있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은 로마를 찾는 여행자들이 몰리는 성당 중의 하나로, 판테온 근처에 있다.
고색창연한 도시 로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신식 건물이라 이탈리아 사람들이 떨떠름하게 생각한다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당. 그래도 통일 이탈리아를 이뤄낸 초대 국왕의 이름을 딴 웅장한 건물이다.
신양란 작가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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