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노량', 김윤석이 완성한 최후의 이순신…유언보다 좋았던 건

김지혜 2023. 12. 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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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노량:죽음의 바다'를 보러 가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이 말이 나오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총에 맞아 숨지며 남겼다는 유언이다.

이순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하는 김한민 감독과 최후의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석은 이 장면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누구나 다 아는 에피소드를 두고 연출과 연기의 독창성은 물론이고 진정성까지 담아야 했다. 두 사람은 이 장면의 숙제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노량'은 초반 한 시간 동안 임진왜란을 둘러싼 조선군과 왜군, 명군의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을 다룬다. 본국 귀환을 계획하는 왜의 고니시(이무생)는 명나라 진린(정재영)을 뇌물로 사로잡아 퇴로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를 안 이순신(김윤석)은 7년 전쟁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왜군을 섬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이 시마즈(백윤식)가 고니시의 함대를 구조하기 위해 나선다. 이순신은 조명 연합군과 함께 시마즈의 일본 함대를 노량해협에 유인한 후 최후의 전투를 준비한다.

노량해전은 이순신의 3대 대첩 중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전투이자 최후의 해전이다. 필연적으로 이순신의 죽음을 다뤄야 하는 만큼 영화는 '죽음의 바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노량:죽음의 바다'는 앞서 '명량'과 '한산:용의 출현'이 그러했던 것처럼 초반 한 시간은 임진왜란의 정세를 보여주는 빌드업 구간, 후반 한 시간은 바다에서 펼쳐진 전투를 재현하는 스펙터클 구간으로 설계했다. 이야기의 구조면에서 전작들과 큰 차이는 없지만 임진왜란의 양상과 이순신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해전의 전술도 다르다. 무엇보다 '노량'은 7년 전쟁의 끝을 맺는 최후의 전투다. 의미와 상징성에서 전작을 능가하는 무게감이 있다.

지난 10년간 이순신이라는 한 우물을 판 김한민 감독은 기술력을 집대성해 노량해전을 스크린에 재현하는 동시에 이순신이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보여주고자 했던 '완전한 승리'의 쾌감과 감동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다소 길게 느껴지는 조, 왜, 명의 외교전과 신경전을 배치한 것 역시 이순신이 노량해전을 치른 명분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김한민 감독은 모두가 끝난 전쟁이라고 했을 때 왜 그토록 이순신이 '왜의 섬멸'을 주창했는지를 관객에게 설득한다. '완전한 승리'라는 말이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이유다.

'노량'은 10년의 기술력을 집대성한 100분의 해전신이 있지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간은 이순신의 고뇌를 형상화한 후반부 롱테이크 신이다.

김윤석은 위대하고 거룩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그려냈다. "'노량'의 이순신은 '현장'(賢將)"이라는 김한민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그는 혜안과 용기를 갖춘 고뇌하는 장군의 모습을 정중동(靜中動)의 연기로 표현해 냈다.

조선군과 왜군이 몸으로 맞붙는 백병전 구간은 영화의 백미다. 이때 극장에 울려 퍼지는 것은 '진격'의 신호로 사용되는 거대한 북소리다. 이순신은 아비규환의 전장에서 혼신의 힘으로 북을 친다. 이 소리는 조선군에겐 '독려'의 메시지가 되고, 왜군에겐 '공포'의 굉음으로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김한민 감독은 이 구간을 대부분 롱테이크로 담아 전장의 치열함을 담아냈고, 이순신의 고뇌에 찬 내면까지 형상화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에선 죽은 자와 산 자 모두 영혼이 자유롭지 않다. 승리의 쾌감을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반전(反戰) 메시지로 이어지는 이유다.

'노량'은 관객의 기대치가 최고조에 달해있는 이순인의 유언 장면을 시간순으로 배치하지 않았다. 필사의 전투의 한가운데가 아닌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 배치했다. 극적 연출과 감정 과잉을 배제하고 기록에 근거해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로 담백하게 읊조리는 것을 택했다.

소재가 배우의 자세, 관객의 태도를 결정짓는 영화가 있다. 이순신 3부작이 그런 영화다. 이순신이라는 완전무결한 영웅의 거룩한 행보를 연기해 낸 배우와 그걸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시리즈 영화인 만큼 전작과의 비교, 우위를 따지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역대 흥행 1위 기록(1,761만 명)을 가지고 있는 '명량'과 완성도에서 1편을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산:용의 출현'의 절충안을 모색한 것이 '노량:죽음의 바다'다. 그러나 최종장이 최고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긴 해전을 내세웠지만, 초중반부의 탁상공론은 인내를 요한다. 거룩과 장엄의 분위기 역시 감동을 유발하기 보다는 끌어내려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량: 죽음의 바다'가 이순신 3부작의 대미라는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을 이순신의 마지막 해전에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이 현장에 그의 정신을 녹여냈다. 153분의 긴 러닝타임이 필요했던 이유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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