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김윤석 “이순신은 위대한 영웅이자, 700년 전 조선의 불행한 군인”[SS인터뷰]

함상범 2023. 12. 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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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츠서울 | 함상범기자]실제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이 가장 힘들었을 때가 명량대첩과 노량해전이 벌어진 사이 기간이라고 한다.

조선 수군을 이끌며 기울어진 전쟁의 양상을 뒤집은 영웅이지만 동료와 임금의 시기를 받아 백의종군했다.그 과정에서 고초가 상당했다. 아들은 왜군에게 살해당했다. 승전고를 울렸지만 인정받지 못한 채 무거운 질책만 받았다. 심각한 스트레스로 평소에도 식은땀을 흘렸고, 각혈을 했다.

배우 김윤석은 이 시기의 이순신을 연기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프로젝트 대미를 장식한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에서다. 용맹했던 ‘명량’(2014)의 이순신(최민식 분)과 지략이 뛰어난 ‘한산:용의 출현’(2022)의 이순신(박해일 분)과는 다른 결이다.

‘노량’속 이순신은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사라진 가족과 전우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도 전달됐다. 목숨 건 전투를 거쳐 끝내 최후를 맞이했다. 김윤석의 온 몸에서 영웅의 삶이 뿜어져 나왔다.

김윤석.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윤석은 20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은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가 이순신을 맡을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감회가 남다르긴 했다. 노량해전이 가진 의미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가장 피폐했고 시체처럼 살았던 이순신이 엿보였으면”

‘명량’과 ‘한산’, ‘노량’으로 이어지는 이순신의 공통점은 과묵함이다. 왜를 손쉽게 고향으로 보낼 생각이 없다는 결기만 있을 뿐이다. 계속 이순신의 발목을 잡아 왔던 원균이 없어지자, 명나라 총사령관 진린(정재영 분)이 이순신을 흔든다.

진린은 왜군을 고향으로 보내주려고 했고 이순신은 섬멸하려 했다. 진린은 굳이 병사들을 죽이지 않으려 했고, 이순신은 이 해전에서 모두 죽어도 좋다는 각오였다. 그래야 다시는 일본이 조선을 넘보지 못할 것이라는 신념이 있다. 해상 전투로 가기 전 김윤석은 이순신의 심리전에 집중했다.

“‘명량’, ‘한산’에서는 아군과 갈등이 있었다면, ‘노량’에는 없어요. 근데 명이 개입하면서 곤란해졌어요. 이순신의 숙제는 진린과 고니시(이무생 분)가 어디까지 협상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어요. 진린이 믿을 수 없게 해서 조명연합을 해체하자고 했는데, 다음날 작전회의 때 와서 진린이 같이 회의하자고 해요. 그 저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포인트였어요.”

김윤석.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극 중 이순신의 얼굴에는 슬픔과 노고가 가득 담겼다. 7년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한 이순신의 역경을 담으려 했던 김윤석의 진심이 눈빛과 표정에서 묻어난다.

“이순신 장군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제가 연기한 시기예요. 백의종군도 있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도 했죠. 아들도 왜군에게 잃었어요. 어영담(안성기 분)과 이억기(공명 분)와 같은 피를 나눈 전우들도 전투에서 숨졌죠. 명량해전에서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음에도, 오히려 벌을 받아요. 가장 피폐하고 시체처럼 살았던 시기예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라 700년 전 이 땅에서 군인 신분으로 살아간 불행한 사람이에요. 영웅이란 것 한편에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순신의 최후, 담백했으면 했다”

‘노량’의 백미는 단연 100분에 걸쳐 이어진 해상전투다. 왜군 함선 100여척을 단숨에 박살 낸 초반부부터 어둠 속에서 벌어진 백병전, 해가 뜬 뒤 펼쳐지는 아비규환,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단순히 전투가 아닌 7년 전쟁의 파노라마가 1시간 40여 분 동안 관객을 사로잡는다.

“최후의 백병전을 찍을 때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장면에서 감독님이 ‘여기서 장군님이 어떤 운명을 느끼지 않았을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태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전쟁의 참상이 제 얼굴에 비쳤으면 했어요.”

김윤석.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백병전이 백중세를 이루는 사이 이순신은 북채를 집었다. 전투에서 북소리는 일종의 응원가다. 이순신은 승리의 염원을 담아 직접 북을 쳤다. 그러다 가슴과 겨드랑이를 관통하는 총을 맞았다. 몸을 가눌 수 없이 죽어가는 육체에서조차 승리에 대한 집념이 전달됐다.

“진실 되게 표현하자고 생각했어요. 상황과 감정 모든 게 절정이잖아요. 여전히 아비규환 속이고. ‘내가 죽었다는 걸 알리지 마라’라는 표현을 너무 과하게 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위대한 영웅의 죽음에서 진공상태가 나오는 그런 과한 장면은 없었으면 했죠. 장군님의 목적은 승리니까요.”

김윤석은 영화 ‘타짜’(2006)의 아귀로 명성을 알린 뒤 대한민국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선과 악을 오갔지마 대체로 포스가 강한 ‘마초’를 연기했다. 스스로 연출한 ‘미성년’만 힘이 약한 편이었다.

“힘이 있을 때나 그렇게 하지, 힘도 없으면 못 하겠죠. 제 주관은 쓸데없이 엉뚱한 것에 소모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집중하는 데 있어요. 주제 넘게 욕심 부리지 않는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 작품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지금이야 한국 영화가 힘들지만, 한 차원 질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시 봄이 올 겁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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