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人문화] 이광호 "의도적 확대로 추상성 부여…개인 감상에 가치"
한국의 대표적 사실주의 화가로 불리는 이광호(56) 작가가 국제갤러리에서 다음달 28일까지 개인전 'BLOW-UP'을 선보인다. 지난 2014년 이후 9년 만에 열리는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65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2017년 뉴질랜드 여행 중 남섬 케플러트랙 등산로를 오르다 우연히 발견한 습지를 60점의 캔버스로 구성된 이 연작으로 표현해냈다. 그는 하나의 이미지를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큰 이미지로 확대한 후 60개의 화폭으로 구획했다. 각각의 캔버스가 전체 풍경 이미지의 일부이자 또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 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작가는 "처음 이 습지를 봤을 때는 이렇게 많이 그리게 될 줄 몰랐는데 가볍게 찍은 사진을 작업실에서 확대해보는 과정에서 상당히 흥미로워 몇 점 그려본 뒤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이후에 여러 번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습지에서 보이는 다양한 이미지의 성격, 수풀이 뒤엉킨 건물, 수면에 비치는 하늘과 구름의 형상 등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부분이 제가 표현하기에 상당히 적합한 대상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습지에서 자라는 붉고 흰 이끼들이 확대된 작품은 마치 커다란 식물처럼 보이기도 할 만큼 실제 크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이것을 이끼로 인식하든, 타지의 풀 나무로 인식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제가 의도적으로 확대해 추상성을 부여한 작품 앞에서 개개인이 느끼거나 상호교류하는 그 무언가에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의 제목 'BLOW-UP'은 작가가 영감 받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동명의 영화에서 인용했다. 영화는 시선의 욕망과 시각적 진실에 의문을 던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의 연작도 각각의 캔버스가 저마다의 독자성을 이끌어내려는 듯 재료와 테크닉의 측면에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와 흡사하다.
구획의 과정이 보다 기계적이 된 만큼 작가는 화면 구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대신 즉흥에 가까운 붓질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했다. 그는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하고자 하는 의도를 배제한 상태에서 한 개의 독립된 프레임을 회화적으로 완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며 "그동안 외면해 왔던 바탕면과 새로운 기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동대문에서 천을 구입해 사이즈부터 그라운딩까지 직접 제작해 다양한 바탕화면의 캔버스에 작업을 했다"며 "어떤 상황에서는 굉장히 흡수력이 커져 자연스럽게 화면에 반응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되기 때문에 다른 분위기가 난다"고 설명했다.
또 "붓질을 할 때 어떤 윤곽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화가한테는 회화적 감성을 좌우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며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좀 저하되다보니 윤곽이 분명한 대상을 그리기엔 제 눈이 감당을 못하는 측면이 있더라"고 했다.
그는 "윤곽의 경계가 흐려지니 회화적인 감성이 좀 더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 윤곽 묘사에 대한 실험으로 엔코스틱(encaustic) 기법을 사용해봤다"고 말했다. 엔코스틱은 투명한 깊이감과 색채 표현을 위한 글레이징이나 고무붓을 활용한 임파스토, 밀랍에 안료를 섞은 후 불에 달궈 화면에 고착시키는 고대 이집트의 기법이다. 화면 위에서 밀랍이 녹으면서 물감이 서로 섞여 윤곽을 흐리게 만드는 우연적 효과를 낳는다.
이광호 작가는 전통적 회화 기법들을 답습하되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회화적 재현'이 아닌 '회화적 시선의 재현'을 탐구하고 그만의 시각 언어를 일궈왔다.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이화여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조현화랑 '이광호'(2018), 국제갤러리 '그림 풍경'(2014)이 있으며,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항저우 바이아트매터스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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