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만 바라보는 윤석열, 자주적 외교 펼치며 입지 넓히는 일본
윤석열 정부 1년의 최대 치적, 한·일외교 '정상화'
현 정부와 여당 주요 인사들은 정부 출범 1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한·일외교 정상화'를 한·미동맹 복원과 함께 '윤석열 정부 최대 치적'으로 손꼽았다. 두 가지 '성과'는 8월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하나로 이어져 한·미·일 안보협력이 '획기적인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였다. 3월 6일에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이 발표되었고, 열흘 후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5월 초에는 이에 대한 답방의 형태로 기시다 수상의 방한이 히로시마 G7을 열흘 앞둔 시점에서 실현되었고, 그 사이 4월 말에는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캠프 데이비드의 한·미·일 정상회담은 이러한 조각들이 합쳐져 완성된 그림이었다. 그렇게 보면 2023년 한국의 외교안보를 상징하는 캠프 데이비드의 그림은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첫 획이 그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 5년 동안 악화되었던 한·일관계의 원인과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만 돌리면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일본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일관계 개선을 '정상화'로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한·일외교 정상화'가 윤석열 정부의 최대 치적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2023년에 한국 외교가 한·일 관계에서 직면할 세 가지 리스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최대의 치적은 최대의 실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한·일관계의 세 가지 리스크
2023년이 저물고 2024년을 맞이하는 현재 한·일관계가 직면하게 될 리스크가 세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째, 한·일 양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두 개의 전쟁이 가져오는 리스크를 둘러싸고 미묘한 제로섬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미국의 전쟁에 한·일 두 국가를 끌어 들이는 인력으로 작동하는 구도 속에서, 두 개의 전쟁이 가져올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일본의 노력이 한국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 2024년 들어 양국의 국내정치 리스크가 한·일관계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4월에는 한국의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 데다, 일본에서도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가운데 중의원 해산-총선거, 또는 내각 총사직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한·일관계는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내각의 주요 실적/실정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국내정치 주류세력을 누가 담당하는지가 한·일관계 평가와 향후 전개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셋째, 한·일 양국 정부가 주도하는 관계 개선 분위기 속에서 양국 국민의 여론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어서, 이러한 여론 지형이 한일관계에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국민이 윤석열 정부하의 대일 관계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한국 국민은 냉정한 평가를 보이고 있다. 또한 처리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는 한·일 국민 사이에서 찬반 여론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서, 방류 방침의 지속 여부가 한·일관계에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개의 전쟁 리스크와 일본의 '글로벌사우스' 외교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여 한·미·일 안보협력을 동맹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으로 요약되는 일본의 대외정책 기조는 2024년에도 크게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 반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유동적인 정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미국에서 대선이 치러지는 상황에서 일본은 변수를 최소화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두 개의 전쟁 리스크에 대응해 일본은 2023년 하반기 이래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 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첫째, 일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열세를 인정하고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0월 경부터,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승전 시나리오를 주도했던 이른바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열세를 인정하는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 외교는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면서 우크라이나 부흥에 중점을 옮기는 모습이 확인된다.
당초부터 일본은, 군사 분야에서 상당한 지원을 실시해 온 G7 국가들에 비해 평화헌법의 제약 등을 이유로 비군사적 민생 분야 지원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일본은 세 차례의 준비회의를 거쳐 2024년 2월에는 일-우크라이나 경제부흥추진회의를 도쿄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의 '대가'로 전후 부흥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을 피력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지 않은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일본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일본답게'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석유 외교'를 표방하며 팔레스타인에 배려하는 중동 외교를 전개해 왔다. 이는 미·일동맹 중심 외교의 예외적 사례, 또는 자주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어 왔다.
일본은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에 서지 않고, 양자 사이에서 중재에 나서는 등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기시다 수상은 하마스의 행동을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테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한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고 팔레스타인 지지를 확인했던 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4개국에 전화를 걸어, 대립의 과열을 회피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11월 29일 기시다 수상은 이집트의 엘시시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하고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키기 위한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에도 기시다 수상이 참석해 이스라엘의 헤르초그 대통령과 회담하는 동시에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과도 회담하는 등 가자 사태를 둘러싸고 활발한 정상외교를 전개했다.
바이든 대통령, 푸틴 대통령, 시진핑 국가주석 등 주요국 정상들이 COP28에 불참하고, 윤석열 대통령도 불참한 가운데 일본은 기시다 수상이 직접 참석해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여기에서 일본은 기후 문제와 같은 신흥안보 의제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고 발휘하는 것을 또 하나의 외교 목표로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질서 다극화에 대비한 일본의 주변국관계 관리 외교
그러한 기조 하에서 일본은 지난 8월에 채택한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 입각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동북아시아에서 신냉전 상황이 전개되는 데 대해서는 경계하면서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일본은 2023년 3월에는 중국과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방위당국 사이에 핫라인을 개설한 바 있으며, 재계를 중심으로 중·일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면서 2024년 1월에는 4년 4개월 만에 일본 재계 대표들로 구성되는 '일·중경제협회'의 방중이 예정되어 있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지원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대러 제재에 참가하면서도, '에너지는 다른 문제'라며 사할린1, 사할린2 프로젝트 등에 참가하면서 대러 관계를 관리해 오고 있었다. 나아가 일본은 2023년 8월 아프리카 개발회의(TICAD) 30주년 행사를 개최하는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외교를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ASEAN 우호협력 50주년 기념행사를 2023년 12월 16-18일에 도쿄에서 성대하게 치르기도 했다.
2024년에도 이러한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하위 행위자로 포섭되어 있는 한국은 매우 좁은 선택지를 강요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즉 동북아시아에서 한·미·일 협력 강화가 북·중·러 밀착을 가져오는 가운데, 한국이 일본을 대신하여 대북, 대중, 대러 전선에 내몰리고, '평화 자산' 대신 '전쟁 자산'에 집착하는 한국 외교의 퍼포먼스가 미·중 사이에서 제3의 선택지를 확장하고 전쟁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의 의구심을 강화하여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다.
이는 이미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이것이 2024년에 한국 외교가 미·일 추종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다.
더불어 2023년 일본 외교의 움직임 가운데 주목할 것은 북·일교섭의 움직임이다. 2023년 기시다 일본 수상은 북·일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였으며, 이에 대해 북한도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서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납치자 문제에서 일본이 과거에 설정한 높은 허들(모든 납치 일본인의 즉시 생환)을 낮춰야 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어서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하나, 퇴진 압박에 시달리는 기시다 수상이 기사회생의 '한 수'로 북·일 정상회담을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일본의 국내정치 리스크와 한·일관계
한국의 2024년 4월 총선거를 앞두고 2월 하순에는 제4차 처리오염수 방출이 예정되어 있고, 해마다 2월 22일에 열리는 '다케시마의 날'이 겹쳐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가 중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둘러싼 한·일의 공방 속에서 일본 측의 돌발 발언이 나올 수도 있어서 내년 상반기 한·일관계는 한국 정치의 큰 쟁점으로 재부상할 수 있다.
만일 4월 총선거에서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윤석열 정부는 조기 레임덕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대일 외교는 대표적인 실정으로 지적되어 재고와 수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 강제동원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 처리오염수 방류 문제, 사도광산 및 고려대장경 유네스코 등재 문제 등 갈등 현안이 차례로 수면 위로 등장해서 윤석열 정부에 그 해결을 압박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은 적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나 처리오염수 등의 문제에서 양보한다는 것은 '한국에 유약하다'는 보수 우익으로부터의 비판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기시다 내각의 기반이 안정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2024년 기시다 내각은 위기 속에서 붕괴하거나, 가까스로 연명한다고 해도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하반기에 들어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연말에 이르러 드디어 16%대로 내려앉았다. 마이니치신문사가 12월 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하지 않음'은 79%까지 치솟았다. 이는 해당 신문사가 내각 지지율 조사를 처음 실시한 1947년 7월 이래 최고치다.
높은 물가에 시달리는 국민의 불만에 아랑곳하지 않고 증세를 단행한 기시다 수상에 대해 분노가 쌓여가던 와중에, 극구 부인하던 기시다 수상과 통일교와의 접점이 드러난 데다 자민당에서 관행적으로 자행되던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이에 대한 기시다 수상의 어정쩡한 대응으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시다 수상은 이를 만회할 뚜렷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사카 세계박람회, 방위비 증세를 강행하는 데 대해서도 반발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아베 응원단이던 보수 우익 진영이 일본보수당을 창당하고 본격적으로 기시다 내각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도 지지율 하락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즉 기시다의 고치카이(宏池会)로 대표되는 자민당 내 리버럴 지지자와 아베를 지지했던 보수 우익 지지자가 모두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고 지원했던 아베파가 향후 반주류파로 전향할 가능성도 보인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직격탄을 맞은 아베파 처리에 고심하던 기시다 수상이 이에 연루된 아베파 주요 인사들을 교체하는 것으로 대응했으나, 아베파로부터는 반발에, 문제의 근원을 따지는 국민으로부터는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일본 국내정치 상황은 '물 컵의 절반 채우기'를 기다리던 윤석열 정부에 불리한 형국이 되고 있다. 기시다 내각은 당분간 국내정치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윤석열 정부와의 한·일관계 개선에 올인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레임덕과 정권교체를 두려워하는 기시다 내각과 그 주변에서 '립서비스' 정도의 '시늉'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역효과가 되어 윤석열 정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기시다 내각이 연명을 고려할 경우, 오히려 한·일관계에서 실적을 쌓기 위해 윤석열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 주된 공격 포인트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 법원이 2015년 한일합의를 부정하는 판결을 내놨기 때문이다. 즉 일본은 2015년 합의로 이 문제가 일단락되었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아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 할 수 있다.
한·일 국민의식의 엇박자 리스크
한·일관계는 양국 국민 여론에 민감하다. 그런 점에서 한·일 국민 여론의 엇박자는 '정상화' 이후 한·일관계에 리스크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의 겐론NPO가 실시한 한·일 공동인식조사(2023년 조사는 8월에서 9월에 걸쳐 실시)에 따르면, 한일관계가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한·일 양국에서 대폭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한국: 4.9%->12.7%, 일본:13.7%->29%), 한국 국민의 일본에 대한 긍정적 인상은 소폭 감소했다(30.6%->28.9%). 한국 국민의 일본 불신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래의 한·일관계에 대한 기대에서도 드러난다. 관계 개선을 낙관하는 한국 국민은 소폭 감소했으며(30%->28.8%), 한·일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일본에서 증가한 데 비해(56.5%->61.8%) 한국에서는 줄었다(82.6%->74.1%).
일본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노력에 대해서 한국인들은 긍정 평가가 거의 불변인 반면(14.1%->15%), 일본 국민은 긍정 평가가 크게 늘었다(26.5%->34.5%). 반면 한국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노력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의 긍정 평가는 거의 불변인 반면(21.2%->21.7%), 일본 국민의 긍정 평가는 크게 늘었다(12.2%->34.8%).
일본 국민이 자국 정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국민은 일본 정부의 노력에 대해 크게 점수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시민사회의 한·일관계가 엇박자를 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불만은 윤석열 정부가 집착하는 한·일관계 개선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오히려 한국 국민 사이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데 대한 우려도 커서, 이러한 국민적 감각이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박한 평가에 함께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공동인식조사에 따르면,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한국 국민의 지지는 2022년보다 낮아졌으며(72.4%->60.6%), 부정적인 의견은 증가했다(5.6%->12.4%). 일본에서는 그 반대(찬성은 37.9%->49.9%, 반대는 5.5%->2.8%)여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한·일 양국의 국민적 인식이 제로섬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동인식조사에 따르면 처리오염수 문제를 둘러싼 한·일 국민의 인식 격차는 매우 크며(방류 찬성 한국인=25.1%, 반대 한국인=68.7%, 방류 찬성 일본인=72.4%, 반대 일본인=7%), 이는 2024년에도 방류가 계속될 것으로 예정된 가운데 한·일관계의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예상된다. 한편 양국에서 상대방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국민이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은 양국 관계의 대등화 경향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미·일 협력의 상대화와 절대화 사이의 간극
국제질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겪으면서 다극화 경향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2024년은 그런 의미에서, 이를 어떻게 명명하든, 새로운 국제질서 시대의 첫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한·미·일 협력을 상대화하는 방향으로, 한국은 이를 절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지원과 이스라엘 지지를 철회하기 어려운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향후 한·미·일 협력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일본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등의 지역에서 오래 쌓아온 외교 자산을 동원하여 국제질서의 다극화 경향에 적응하는 노력을 글로벌사우스 외교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해서 일본은 이러한 모습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려고 분투중이다.
미·일 추종외교의 리스크는 미국 대선이 야기하는 리스크와 기시다 내각이 야기하는 일본 국내정치 리스크와 겹치면서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일본 국내정치는 큰 변수가 될 것이다. 기시다 내각은 저조한 지지율에 허덕이는 가운데 '정치의 계절'을 맞이해서, 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서 한·일관계를 현상 유지하는 선에서 동결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일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서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 방식이 법원의 공탁 거부로 파탄 상태에 있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는 한국 국내 법원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이 확인되어 국가배상의 문제가 다시 전면화 되었다. 한·일 양국 정부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움직임에 직면하게 될 것이지만, 양국 정부는 선거 국면의 국내정치 상황 때문에 이러한 대응을 지체하게 될 것이다.
지지율 하락에 허덕이는 기시다 내각이 국내정치를 고려하여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한국에서 치러질 4월 총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윤석열 정부에 시련의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4월 총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패배를 면하게 되더라도, 한·일 양국 국민이 보여주는 여론 지형에서 볼 때, 한국 정부·여당은 한·일관계에서 어려운 선택과 운영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처리오염수 문제에서 한국 국민은 윤석열 정부의 태도와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처리오염수 방류 일정이 향후 한국 외교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과 한·일관계 개선에 매달리며 미·일 추종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내정치에서 고립될뿐더러, 국제질서 만들기의 주요 무대에서 한국이 고립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 경우 두 개의 전쟁으로 탈냉전의 30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이 개시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이 외교 자산을 모두 상실하게 되는 '진실의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윤석열 정부에게 그러한 구상과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를 쟁점으로 삼은 시민사회의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는 국제질서의 다극화 경향을 현실로 인정하고 한·미·일관계에 올인하는 외교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에서도 대북 압박 일변도 정책으로부터 전환하여 대화를 통한 비핵화를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살리는 노력을 하면서 이를 대미·일 외교에서 지렛대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란 리스크를 회피하는 탄력성이 필요한 법이다.
[평화재단 (staff@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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