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베이징] 영어와도 '헤어질 결심' 하는 中… 홍콩 "중국어부터 잘해라"

우경희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2023. 12. 2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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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얼어붙은 미·중 관계 만큼 중국 당국이 주민들의 탈영어 기조를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2차 전체회의 모습. / 사진=로이터

미·중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하자 중국인들과 영어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분위기다. 중국 당국이 탈영어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가운데 중국인들의 영어 구사능력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과 상하이 등 중국 권역 내 대표적 글로벌 도시들에서도 중국 정부가 영어를 천덕꾸러기 취급하기 시작했고 대표적 대학들의 영어 교육 비중도 축소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영어와의 결별'이 중국과 중국인들의 글로벌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中 최고위 회의서 "대입 필수과목에 영어 빼자"


지난달 글로벌 영어교육기업 EF(에듀케이션퍼스트)가 발표한 2023년 EPI(영어능력지수)에 따르면 중국 국민들의 영어능력지수는 82위로 지난해 62위에서 20계단 떨어졌다. 중국령인 홍콩이 29위로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중국인 본토의 영어능력지수 82위는 '낮음' 단계에 포함된 수준이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13계단 떨어진 49위였다.

중국의 영어교육 열기는 실제 최근 수 년간 확연한 퇴조세를 보이고 있다. EF는 "지난 4년간 동아시아에서 미국 대학에 입학한 학생 수가 크게 줄었는데 특히 중국 학생은 30% 줄었다"며 "정치적·인구적 변화의 징후이기도 하며 동시에 (중국이) 교육 면에서 서구 문화 패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F 분석은 중국이 더이상 영어를 기반으로 미국 주도 경제권역에 의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실제로 반 영어 정서를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3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 대학 입학시험에서 영어를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식 안건으로 채택, 논의되진 않았지만 교육현장에서 현실화할 경우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 학교 영어 수업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매년 중국 최고위 의사결정 회의에서 영어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주장들은 중국 내에서도 매번 거센 찬반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채택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중국 내에서 지도부 최고위층을 중심으로 반영어정서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에서 '탈영어'는 곧 '탈미국'을 의미한다.

중국의 탈영어 기조는 실제로 EF가 주목한 4년 전부터 본격화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과 함께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자 중국 정부는 2020년 초·중학교에서 외국교과서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안을 발표했다.

중국 당국은 자국 밖에 있는 외국인 교사들의 온라인 수업 진행도 금지시켰다. 영어교육을 빌미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의 정서가 중국으로 유입되는 경로를 아예 막겠다는 의도다. 국제적 커리큘럼이 있는 학교들은 별도의 절차를 통해 감시하도록 했다.

이듬해인 2021년엔 중국 대륙에서 가장 글로벌한 도시인 상하이가 초등학교 영어시험을 폐지시켰다. 당시 중국 정부는 "문화적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지만 "영어를 모르고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며 끝내 미국과 경쟁에서 승리하기도 어렵다"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됐었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영어 안 배우는 中' 국가경쟁력에 어떤 영향 줄까


이런 일련의 과정은 교육현장에도 강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유수 대학들마저 영어교육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확인된다. 영어교육 축소가 심각한 국가경쟁력 위축을 불러올 것이며 학문적 쇄국주의라는 비난 여론이 만만찮게 일고 있지만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애국주의가 이를 압도하는 분위기다.

대학평가기관 QS 선정 아시아 소재 대학 랭킹 34위의 명문대 중국과학기술대학은 지난 10월 영어전공을 폐지했다. 대학 측은 "문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영어전공은 이공계 인재 육성이란 우리 대학의 방향성과 불일치하는 점이 많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지만 이공계 연구에도 영어 논문 해석이나 외국인 연구자와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란 점에서 납득할 수 없다는 반발이 제기됐었다.

앞선 9월엔 중국 산시성 명문 자오퉁대(교통대)가 졸업 조건에서 영어시험을 삭제해 역시 반발을 샀다. 1987년부터 영어시험을 통과해야만 졸업이 가능했는데 갑자기 이 기준을 삭제했다. 학교가 민족주의에 휩쓸리면서 학생들의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중국의 탈영어는 도시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베이징시 교통부는 12월 초부터 "도로안전과 교통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어와 영어로 병행된 도로표지판을 모두 중국어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베이징시 교통부 홈페이지 내 교통표지판 안내 역시 영문이 삭제됐다.

중국의 탈영어 기조는 이제 비즈니스 현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한 지역이었지만 중국 반환 이후 눈에 띄게 경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홍콩의 경우 이제 IB(투자은행)를 포함한 대부분 취업시장에서 영어 대신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영어권 인재의 유입이 줄어들고 중국 본토 인력들의 이주는 급격하게 늘어난다.

홍콩에선 영어, 그리고 홍콩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함께 글로벌 도시의 위상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홍콩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현지 직업컨설팅회사들을 인용해 "홍콩에서 직장을 구하려면 이제 중국어 구사능력이 필수로 요구되며 일부 회사는 홍콩인을 포함한 모든 직원에 대해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대화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경희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우경희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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