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맞아야 야구 잘해" 아이 몸속 피멍, 부모 마음 大못 박았다 [박연준의 시선]
-체벌 사실 알릴시, 야구계 '배신자'로 낙인 찍히는 사회
-아이들의 꿈은 아이들이 만드는 것
(MHN스포츠 박연준 기자) 아이들 몸속 자그마한 체벌의 흔적이 부모 마음속에 커다란 대(大)못을 박는 것으로 변한다. 언제까지 아마야구 선수들은 이 고통을 견뎌야 하며, 부모는 잠잖고 지켜만 봐야할까.
잠잠했던 아마야구계 폭력 사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체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 지도자들은 여전히 '지도 방식'으로 둔갑하여 아이들에게 아픔을 주고 있다. 이는 크게 보면 성장하는 아이들의 꿈나무를 톱으로 베어낸 격. 작게 보아도 폭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지난 15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야구 명문으로 불리는 서울의 한 A 중학교 야구부에서 지도자들이 특정 선수를 지속해서 학대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피해 선수는 A 중학교 감독과 코치진이 자신을 향해 지속해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피해 선수는 이러한 학대 행위로 인해 시력이 한 달 새 1.0에서 0.1로 하락, 틱 장애 증상을 보였고 현재 우울증을 안고 야구를 그만두게 됐다.
이후 코치진은 피해 선수 부모에게 사과 의사를 전했다. 그중 한 코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관심 표현이자 친밀감 형성을 위한 장난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A 중학교 감독은 "폭언이나 폭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 측은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자료를 요구해 보내줬고, 교육청에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 개최도 요구한 상태"라며 "결과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와 상관관계, 그리고 지도자의 '구시대적 방식'
한국 아마추어 야구 인프라는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발전을 거듭해 나가고 있다.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 사정과 운동 시스템 등 여러 방면에서 매년 활성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초·중·고 엘리트 야구에 이어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는 베이스볼 클럽(BC) 등이 확장되면서, '야구선수'의 꿈을 꾸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폭행과 폭언 등 체벌의 모습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보이고 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을 대하는 인(人)프라는 발전이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체벌의 모습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계기로 최근 정치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논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교권 확립을 위한 대책으로 정치권에서 대두되고 있다. 폐지론에 찬성하는 현직 한 교사는 21일 MHN스포츠를 통해 "학생인권조례의 오·남용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해당 조례는 학생 교육과 생활 지도를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된다"며 "교권 확립을 위해 폐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주요 조항의 내용 중에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폐지론에 반대하는 또 다른 교사는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존중하는 공간이다. 이를 위해서 폐지가 되어선 안 된다"며 "최근 사회 분위기에서 '체벌 부활'을 원하는 여론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여파가 야구부를 비롯해 운동부의 체벌 악습을 다시 만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일부 지도자들의 '구시대적 지도 방식' 역시 체벌의 이유가 되고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고 한국 아마야구의 지도 방식은 "잘못했으면 맞아야 한다"는 흐름이 계속됐다. 선수들이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수하지 않을 것이고 '당근이 아닌 채찍'의 선택이 선수를 발전시키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폭행 사실 알릴시, 배신자로 낙인"
아마추어 야구의 문제점을 주로 다루고, 선진 야구를 코칭하는 단체인 '코치 라운드'의 최승표 대표는 평소 강연을 개최해 일부 지도자로부터 체벌 고통을 받은 야구선수의 학부모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최 대표는 같은 날 본 기자와 전화에서 "폭행을 당한 선수들이 가해 지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나 때는 맞고 잘했다, 너희는 맞아야 잘한다'는 말이 대다수였다. 선수들이 목표를 가지고 그라운드에 나가는 것이 아닌, 맞지 않기 위해서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게 하여 실수를 줄이는 것으로 변질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학부모께서 폭행 사실을 경찰이나 학교 측에 알리기 꺼리는 경우도 많았다. 해당 사실을 알릴 경우, 야구계에서 '배신자, 고발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라며 "초등학교를 비롯해 상급 학교인 고등학교 연습경기에서도 선수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지도자를 쉽게 볼 수 있다. 결국 지도자의 생각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또 폭력 사실이 알려준 뒤, 서로 책임 전가를 하는 모습 역시 현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체벌이 처벌 될 경우 지도자는 크게는 자격 정지,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다만 이 과정까지 흘러가는 데 있어서 여러 문제점이 있다. 특히 야구부 등 운동부의 체벌 사태에 관하여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이러한 부분들이 서로의 책임 전가로 변질되었으며, 별다른 조치 없이 피해 선수가 야구계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체벌 규정에 관해 수도권 한 야구 협회 관계자는 본지를 통해 "야구부를 넘어 협회, 체육회 등 상급 협회들이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라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삼진 아웃 제도(3번의 실수 시, 영구 제명) 혹은 즉각 영구 제명 등을 고려해 봐야 할 시기"라고 피력했다.
아이들의 미래는 아이들이 만드는 것
지난 2021년 나이키 코리아가 공개한 '새로운 미래, A New Day, Play New' 광고는 학생 운동부의 체벌 악습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해당 광고에서 전하고자 한 핵심 내용은 "우리는 스포츠의 즐거움을 되찾는 것, 세상을 향해 목소리 내는 것 그리고 우리 손으로 스포츠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었다.
광고 내용처럼 아마 야구 선수들이 지도자의 억압을 받는 것이 아닌,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펼칠 세상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를 비롯해 야구협회, 그리고 지도자의 생각까지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아마 야구 선수 즉, 야구 꿈나무들은 오로지 '야구선수'의 꿈만을 바라보고 달려야 한다. 그 어떠한 체벌과 폭언은 용서되지 않는다. 한국 야구가 선진 야구로 가기 위해선, 인프라 확장 우선이 아닌 '사람이 먼저'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임을 알려드립니다. 사진=나이키 코리아 유튜브, MHN스포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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