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시즌 앞두고 불붙은 행동주의…또 '찻잔 속 태풍'?
큰손 개미, 다올증권에 CEO 보수 삭감 주문
"기관 투자자 호응 못얻어·합리적 주주제안 필요"
내년 3월 주주총회 시즌에도 '주주 행동주의'가 높은 존재감을 자랑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현대엘리베이터, KT&G 등은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타깃이 됐다. 이들은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환원을 높이고, 독립적으로 이사회를 꾸려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아니지만 대주주로 등극한 '큰손'이 나서는 경우도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2대주주로부터 대표이사 보수 삭감과 함께 자본 확충 요구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움직임이 강화되는 가운데, 작년처럼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관투자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 주주제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삼성물산 등에 주주환원 강화 촉구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KT&G, 현대엘리베이터, DB하이텍 등 굵직한 상장사들은 행동주의 표방 펀드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엔 글로벌 헷지펀드 3곳으로부터 주주제안을 받았다. 블룸버그통신은 화이트박스가 비공개협의를 통해 삼성물산에 자본배분계획을 확립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화이트박스는 삼성물산의 주가가 순자산가치 대비 68% 할인돼있다며 주주들의 수익률과 연계된 임원 보상체계를 마련해 할인율을 줄이라고 주문했다.
앞서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팰리서캐피탈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이사회 다각화, 리더십 강화, 특정사업부문 매각, 지주회사 전환 등을 요구했다. 같은 영국계 펀드인 시티오브런던 인베스트먼트 역시 자사주 매입과 주당 배당금을 4500원으로 상향할 것을 주문했다.
플래시캐피탈파트너스(FCP)는 KT&G와 대립하고 있다. FCP는 백복인 현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며 사장 선임 절차 개선을 촉구했다. 앞서 FCP는 안다자산운용과 함께 현금배당 상향을 제안하고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한 바있다.
KCGI자산운용은 지난 8월 현대엘리베이터에 공개적으로 주주서한을 보냈다. 현정은 회장의 사내이사직 사임과 독립적 감사 선출, 장기주식 보상 도입 등을 촉구했다. 결국 현정은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사퇴했지만, KCGI운용은 자사주 전량 소각, 임시주총 날짜 변경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KCGI운용은 DB하이텍에도 김준기 창업회장의 사퇴와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등을 요구한 상태다.
최근 주주가치 확대가 예상되는 종목을 골라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해 주목을 받은 트러스톤자산운용도 BYC, 태광산업, 한국알콜 등을 상대로 물밑 소통을 하고 있다. VIP자산운용은 아시아시멘트, HL홀딩스를 대상으로 자사주 소각, 배당 등 주주환원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다올증권 2대주주, 공개 주주서한 보내
행동주의 펀드는 아니지만, '큰 손' 개인이 주주제안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최근 다올투자증권의 2대주주인 김기수 프레스토투자자문 대표는 회사에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김 대표는 특별관계자인 최순자씨, 순수에셋과 14.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주식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에서 '경영권영향'으로 변경했다. 이후 회사 측에 이사회 의사록 열람, 등사를 위한 거처분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주주서한을 통해 이병철 다올금융그룹 회장의 보수액 삭감 및 환수을 촉구했다. 다올투자증권이 실적 부진을 겪고 있을뿐더러, 부동산PF 리스크에 노출돼 다올신용정보, 다올인베스트먼트 등 계열사를 떼낸 상황 속에서도 이 회장이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주주 서한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2022년 기본급 및 업무추진비 18억원을 지급받았다. 이는 22개 증권사 개별연봉 공개대상(129명) 중 성과급을 제외한 연봉이 가장 많다. 올해에도 동일하게 18억원의 기본급 및 업무추진비를 지급받고 있다.
김 대표는 이 회장의 이연 성과급을 차감하거나 지급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더불어 이미 지급된 보수액을 환수하고 내년도 보수를 삭감해 주주와 임직원 고통을 분담할 것을 촉구했다.
나아가 회사의 자본적정성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대주주가 참여하는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본확충을 제안했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같은 움직임은 내년 초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주총 실시 6주 전까지 안건을 전달해야 한다"며 "3월에 정기 주총이 열린다고 가정할 때 1~2월에는 주총 안건이 전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들의 주주제안이 주총을 통과해 회사 경영에 실제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에도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 연합이 공격적인 움직임을 펼쳤지만 주총 표 대결에선 고배를 마신 탓이다. 실제로 작년 3월 주총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에 주주제안을 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정한 안건이 부결되는 쓴맛을 봤다.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캐스팅보트를 쥔 기관투자자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실성있는 주주제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너 지분이 과반 이상인 곳들은 어쩔 수 없지만, 부결된 가장 큰 이유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제안이 국민연금과 기관으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합리적인 안건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공개 주주서한 외에도 다양한 대화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며 "컨설팅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주주행동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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