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 고맙다”…베트남·멕시코 등 ‘커넥터’ 5개국 부상 [글로벌리즘의 종말]
베트남, 탈중국 기업 생산기지 대거 유치
‘관세 혜택’ 노린 中 기업들 멕시코에 공장 신설
일본, 지정학적 호재에 반도체 부활 노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기존 공급망이 무너지고 세계가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경쟁 블록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베트남, 멕시코 등 일부 국가들이 ‘커넥터(connectors·연결국)’ 역할을 하며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서방’ 진영 혹은 ‘중국-러시아’ 진영으로 크게 양분된 세계에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지정학적 단층선(정치적으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간)’에 위치한 나라로 베트남, 폴란드, 멕시코, 모로코,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을 꼽았다. 무역 및 투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볼때 이들 국가는 탈세계화 시대에 세계 경제의 주요 연결고리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은 “블록화 속에 모든 국가들이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들은 지정학적 단층선에서 ‘경제적 횡재’를 잡으려는 기회주의적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들 5개국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 제재 및 고율 관세를 필두로한 서방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전략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중국 대신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는 다국적 기업들에게 미국편도 중국편도 아닌 이들 국가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장 적은 대안인데다, 중국 기업들에게도 높아지는 무역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들과 멕시코는 탈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국으로 꼽힌다.
베트남은 지난 2018년 미중 무역전쟁 개시 이후부터 관세를 피해 중국 밖으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제조업체들이 가장 선호하는 목적지로 자리잡았다. 페가트론, 럭스셰어 등 애플 공급업체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생산 거점을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최근 미국과 베트남이 양국 관계를 가장 높은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끌어올리고 경제 교류 확대에 나서면서 미중 양국의 베트남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역시 미국 주도의 ‘니어쇼어링(인접국으로 생산시설 이동)’ 노력의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멕시코는 저렴한 인건비를 필두로 대미 시장을 겨냥한 기업들을 대거 유치하고 있는데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이용해 관세를 회피하려는 중국 기업들의 진출도 급증하는 추세다. 미국의 대중 수입 감소를 틈타 올해 최대 대미 상품 수출국에도 올라섰다.
대표적 자원 강국인 인도네시아는 광물 공급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고조되며 전기차·배터리 분야 주요 기업들의 러브콜을 잇따라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핵심광물인 니켈 매장량 1위 국가이자, 망간·코발트 등의 배터리 원료 생산국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분야에서 80억달러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하며 미국과 헝가리, 멕시코에 이어 4위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연결국들의 입지 확대는 역설적으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경제 대국 간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여전히 매우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연결국들이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균열을 메우는 다리 역할을 할 뿐, 주요 수출·수입 상대국으로서 미국이나 중국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DBS은행에 따르면 동남아에서 중국의 직접 투자는 지난 2013년 70억달러(9조 1350억원)에서 2022년 190억달러(24조8000억원)로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이 부분적으로 완성된 제품을 동남아 국가로 보내 최종 제품으로 만들고, 이를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이 크게 늘어난 것이 주요 배경으로 지목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멕시코 민간산업단지협회 자료를 인용해 “멕시코에 공장을 여는 이들은 대부분 중국기업”이라면서 “앞으로 2년 안에 신규 사업체 5곳 중 1곳은 중국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과적으로 연결국들의 부상은 미중 간 직접 연결돼있던 공급망 사슬을 늘림으로써 글로벌 공급 지형을 복잡하게 만들고, 기업과 소비자들이 부담해야하는 비용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월 국제결제은행은 연구 보고서를 통해 2021년 이후 국제 무역의 경로가 추가되면서 비중 간 공급망이 더 복잡해졌다면서 “미국에 공급되는 많은 상품들은 여전히 중국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결국은 아니지만 공급망 재편이라는 지정학적 호재를 누리는 곳이 일본이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탈중국이 속도를 내면서 일본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가 쏟아지면서다.
글로벌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2024년 말 가동을 목표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총투자액은 86억달러(약 11조2230억원)며 일본 정부는 4760억엔(약 4조3386억원)을 지원했다.
미국의 마이크론은 2025년까지 일본에 5000억엔(약 4조5574억원)을 투자해 히로시마 공장을 증설한다. 이곳에서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ASML의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도입해 차세대 메모리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곳에도 일본 정부 지원금 2000억엔(약 1조8229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요코하마에 400억엔(약 3646억원)을 투입해 3D 반도체 시제품 라인 등 R&D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삼성 투자액의 절반인 최대 200억엔을 보조하기로 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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