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겨자먹기?' 은행권 역대 최대 상생금융 뒤 그림자

노명현 2023. 12.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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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횡재세 대신 유연함 강조
불황 계속되면 '추가 상생' 우려도
'순이익' 기준 분담…충당금 확대 전망도

국내 20개 은행들이 십시일반으로 '2조원+α'의 민생금융(상생금융)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역대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이른바 횡재세(금융소비자보호법·부담금관리기본법)를 통해 걷을 수 있는 재원보다도 많다.

특히 대출금리 4% 이상의 개인사업자대출을 보유한 차주라면 4%를 넘어 부담한 이자를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은행권은 최대 187만명, 1인 당 85만원 가량 이자 환급을 받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자부담에 시달리던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반면 은행권은 이같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상생금융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역대급 상생금융…경기악화땐 또 나올라

은행권이 역대 최대 규모의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은 것은 은행을 향한 비판적 시선이 갈수록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 수장들은 지난해부터 은행권을 향해 '이자장사' 비판을 쏟아냈는데 최근 수위가 더 세졌다.

금리 인상으로 차주들의 부담이 늘어난 가운데 은행들이 이자이익을 기반으로 실적 성장을 이어가자 윤 대통령의 '종노릇' 등의 날선 발언이 이어졌다. 이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을 향해 상생금융을 압박하는 시발점이 된 게 사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경기 침체가 내년에도 지속하고 차주들의 부담이 지속될 경우 당국에 의해 은행권이 또 다시 상생금융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은행들은 이번 민생금융 지원방안 발표 이전에도 개별적으로 취약 차주 지원을 위한 이자감면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금융당국은 횡재세(법안) 도입 등으로 초과이익 환수를 법제화하는 것보다 필요한 시기에 자율적으로 마련하는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마다 경영 상황이 다른 만큼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횡재세 도입보다는 낫지만 반복되는 상생금융 압박은 경영 불확실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워낙 경기가 좋지 않고 고금리 상황이라 어려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한다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당국이 필요로 할 때 은행권에 상생금융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긴 점에서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은행연합회는 "추가 상생금융을 언급하기에는 이르고 이번에 마련한 방안을 차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집행에 속도를 내는데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정건전성 영향 없다지만…

금융당국은 상생금융 방안 마련 전부터 재정건전성에 영향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주현 위원장은 이번 방안 발표 후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최대한의 수준'이라는 점에서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다.

재원 배분은 각 은행별로 올해 순이익(4분기 전망치 포함)의 최대 10% 수준을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5대 시중은행의 경우 2000억원에서 최대 3000억원 수준이 예상된다.

은행 순이익의 일부를 재원으로 활용하는 만큼 자본비율에 영향을 준다. 다만 이번 지원으로 BIS비율(국제결제은행 기준 총자본비율)은 0.05%포인트 하락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 설명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BIS비율은 규제 수준(총자본비율 10.5%)을 크게 웃도는 14%대를 유지하고 있어 안정적이다.

다만 이번 상생금융 방안 마련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입김이 더 세졌고, 순이익을 기준으로 분담금을 나누면서 향후 은행들이 보수적인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엇보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장기화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고, 금융당국도 자본확충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충당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순이익을 줄이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

주주환원 정책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내 금융지주들은 CET1(보통주자본비율) 수준에 따라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순이익이 줄면 배당 여력도 감소할 수 있다. 국내 금융지주들의 분기별 배당액이 1350억~27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금융지주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은행들이 2000억~3000억원을 이번 지원방안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적지 않은 규모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원하면 상생금융 지원을 또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순이익이 많을수록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면 은행 입장에선 이익을 늘리기 위한 경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혁신을 통한 비이자이익 증대보다 안정적인 이자이익에 집중하는 것이 이번 상생금융 방안에선 유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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