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빅버드 한 지붕 두 가족 이루려면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빅버드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수원월드컵경기장의 '한 지붕 두 가족' 계획은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최순호 수원FC 단장의 구상에서 시작된 수원 삼성 홈구장 빅버드 공동 사용은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최 단장이 수원 삼성 수뇌부는 물론 경기장을 관리하는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측과도 대화를 나눌 의지를 보였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최 단장은 지난 20~21일 '스포티비뉴스' 등 다수 언론을 통해 빅버드 공동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육상 트랙이 깔린 수원종합운동장의 시설 노후화 등으로 좀 더 나은 경기장 환경의 필요성을 느낀 최 단장이다. 수원FC 위민까지 사용해 과포화 상태나 마찬가지다.
현역 시절이나 감독 등을 하면서 국내 최초 축구전용경기장인 포항 스틸야드를 누볐던 최 단장이기에 축구에 온전히 집중 가능한 빅버드는 수원FC가 사용하기에 좋은 조건이라 본 것이다. 구상도 확실, 수원 삼성이 지불하고 있는 임대료 10억 수준에 상응하는 금액을 내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시 조례로 시민구단 수원FC는 감면 대상이지만, 적당한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수원FC가 클럽하우스를 갖추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려는 최 단장의 1차적 구상이 실전 경기장이라도 나아지자는 의지였고 빅버드가 적격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였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표적인 앙숙인 인테르 밀란과 AC밀란이 공동 사용하는 쥐세페 메아차(또는 산시로)도 언급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조금 어긋났다는 평가다. 수원 삼성이 K리그2(2부리그)로 강등된 뒤 밝힌 구상은 '그랑블루(현 프렌테 트리콜로)'로 불리는 팬심을 자극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등으로 분노가 치밀고 구단의 다음 구상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최 단장의 발언이 나와 수원시청에 관련 민원 전화가 폭주했다는 후문이다. 최 단장은 강등 여부와 상관없이 선의로 자신의 구상을 말했지만, 묘한 분위기와 섞여 원망을 들은 셈이다.
수원 삼성 측도 격앙됐다. 강등에 책임을 지고 이준 대표이사, 오동석 단장이 동반 사의를 표명해 수뇌부 부재인 상황에서 무슨 대화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불난 집에 기름을 더 끼얹는 격인 발언이다. 적어도 동업자라면 현재 상황을 이해와 위로해 주는 것이 우선 아닌가. 너무 실망스럽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아직 강등의 충격이 있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공동 사용 발언은 성급한 느낌이다. 왜 굳이 말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냉랭한 여론을 의식했는지 최 단장은 21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K리그 출범 40주년 전시회 'K리그 : 더 유니버스' VIP 시사회 종료 직후 취재진을 만나 빅버드 관련 질문을 듣자 "지금부터는 말하지 않겠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대답해 줬다"라며 선을 그었다. 대신 이승우를 영입하려는 서울 이랜드의 자세가 불쾌하다며 "예의가 바르지 않은 행동이다"라고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최 단장이 뿌린 화두는 수원 삼성과 수원FC의 관계를 묘하게 만들었다. 실제 공동 사용이 이뤄지기까지는 많은 허들을 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한때 K리그 관중 동원 1위였던 수원 삼성에 준하는 관중몰이가 가능한가다. 전용구장은 관중이 들어차야 보기 좋은 느낌이 있다. 올해 수원은 19경기 22만 4,177명을 모았다. 경기당 평균 1만 1,799명이다. 반면, 수원FC는 딱 리그 성적 11위와 같은 11위였다. 19경기 9만 8,580명에 경기당 평균 5,188명이다. 두 배 넘게 차이가 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제한적이었던 지난해에도 수원 삼성이 20경기 11만 7,001명에 경기당 평균 5,850명이었다. 수원FC는 20경기 6만 3,244명에 경기당 평균 3,162명이다. 압도적인 총관중과 평균 관중 수치를 극복 가능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최 단장은 빅버드에서 경기를 지속하면서 접근 편의성이 증대되면 자연스럽게 늘 것으로 봤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공동 사용에 따른 외부 관계다. 이를테면 수원 삼성 후원사와 같은 장소에서 경기하니 수원FC를 후원하는 후원사의 후원금 또는 A보드 광고 금액이 어떻게 되는가다. 수원FC는 종합운동장의 기준을 그대로 가져와 받는다면 훨씬 비싼 전용구장인 빅버드에서 받는 수원 삼성의 후원사의 불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수원 삼성 한 중심 후원사는 수원FC의 빅버드 공동 사용 가능성 보도에 계약을 파기 가능성을 전달했다고 한다. 반대로 수원FC는 더 좋은 경기장에서 인상된 금액으로 후원사를 받아야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구단 규모의 차이가 있더라도 같은 기준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시설을 마감하고 본부석 출입구 근처에 조성된 팬샵 블루 포인트는 수원 삼성이 정체성 확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장소다. 저조한 성적에도 팬들이 2~3시간 기다려 유니폼 등을 구매한다. 수원FC가 경기한다면 이 장소는 철저하게 가려져야 한다. 수원 삼성 관계자는 "이 장소는 구단의 역사와 정체성, 정통성이 담긴 곳이다. 수원FC가 이런 것들을 다 덮고 갈 수 있겠는가"라며 의문을 던졌다.
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의 시각도 볼 필요가 있다. 재단은 내년 7월 새로운 잔디를 깔 예정이라고 한다. 보식과 양생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 사실상 하반기는 다른 경기장에서 경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수원 삼성은 용인, 화성 등 인접 도시 경기장을 알아봤고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연고 이전' 가능성이라는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재단은 대관 신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입장이지만, 선뜻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이는 부분도 있다. 영업 일수 확보는 표면적으로 좋지만, 이전에도 자체적인 영업으로 가수 콘서트 등을 유치해 수익을 얻었던 것을 고려하면 수원FC의 공동 사용이 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주중-주말로 연속해 경기를 치를 경우 또는 매주 주말 경기가 있다면 스포츠 이외의 집회, 공연 등 대관 행사를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겨울에 잔디가 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채광기를 돌리거나 구매할 능력조차 없이 대형 가림막으로 덮어 놓기만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수익 우선주의는 더 도드라져 보인다.
과거 재단에서 근무했던 익명의 한 관계자는 "재단의 경영공시나 재무제표를 보면 숫자로 다 드러나 있지만, 프로축구 경기 이상으로 다른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도 재단에는 중요한 측면이 있다"라고 전했다. 적어도 1년에 세 번의 콘서트를 유치하면 10억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이런 외부 사업으로 인해 수원 삼성이 거액의 대관료를 내고도 '을'의 처지를 하소연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수원FC도 같은 일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 수원시다. 수원시는 지난해 1월 당시 김호곤 전 수원FC 단장이 빅버드 공동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자 입장문을 내고 '공동 사용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양구단의 홈구장이 각각 빅버드와 수원종합운동장임을 못 박았다. 물론 정책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내년 4월 총선과 맞물리면서 휘발성이 있는 논쟁거리가 되는 것을 사전 차단하는 것처럼 비친다.
수원 도시, 체육 정책에 밝은 한 관계자는 "수원시 입장에서는 수원 삼성의 강등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염태영 시장 시절 시 홍보 영상에 수원 삼성의 응원 모습을 대표로 넣기도 했었다. 그만큼 수원 삼성의 정서가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관망하는 입장이다. 최 단장이 정말 대화에 나선다면 적어도 리그 일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정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정 발표 시기인) 내년 1월 말까지는 공동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양 구단의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교차 경기 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정리했다.
최 단장은 포항에서 유스에 공들였고 수원FC에서도 B팀을 통해 구단의 뿌리 다지기에 집중해 왔다. 잔류로 다시 육성을 이어갈 연속성도 얻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최 단장이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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