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 그리고 물리학자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은 김상욱 경희대 교수가 5년 만에 펴낸 책이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제목 위에 물리학자의 열망이 포개졌다. 그에게 ‘하늘’은 우주와 법칙, ‘바람’은 시간과 공간, ‘별’은 물질과 에너지로 다가왔다. 여기에 ‘인간’을 더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경계를 넘은 물리학자의 좌충우돌 여행기이자,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지도책”이 완성됐다.
저자도 인정하듯 쉽지만은 않은 책인데 독자들은 “분명 과학 얘기인데 따뜻하다”라는 서평으로 화답한다. 2023년 5월 말 출간된 이후 6개월 동안 18쇄를 찍었고 8만2000권이 팔렸다. ‘다정한 언어’로 물리학을 풀어내 호평받았던 전작 〈떨림과 울림〉의 기록을 뛰어넘는다. tvN 〈알쓸신잡〉 시리즈 등에 출연한 ‘스타 과학자’라는 인지도만으로 다 설명이 되지 않는 판매부수다. 책이 사랑받는 이유를 묻자 “오글거리는 질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2월6일, 서울 한남동의 커피숍에서 김상욱 교수를 만났다. 입구 옆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보름 뒤면 절기상 밤이 가장 긴 동지이고, 25일 뒤면 2023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짧아진 해는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길어지고, 12월31일은 1월1일로 이어질 것이다. 빅뱅으로 탄생한 최초의 ‘원자’는 별을 거쳐 우주공간을 떠돌다 지구라는 행성의 일부가 되고 공룡, 나무, 토끼 같은 생명체를 이룬다. “지금의 내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죽으면 흙이 되고 나무가 되었다가 어떤 책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197쪽)”라는 과학자의 말을 곱씹기에 적당한 날들이다.
원자에서 시작해 우주, 태양, 지구, 생명체 그리고 인간까지 설명한다. 세상 만물에 대한 책이라니 야심찬 시도다.
내게도 특별한 책이다. 예전에 쓴 〈김상욱의 양자 공부〉나 〈떨림과 울림〉은 양자역학과 일반 물리학을 다룬 책이다. 기존 틀이 있고 그 안에서 내 방식대로 얘기를 풀어냈다. 이번 책은 전공 너머의 다양한 영역을 ‘물리학자의 시각’이라는 틀에서 다루었다. 물론 분야를 벗어난 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 과학 교양서를 쓴 것이니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위험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A 분야의 전문가가 B 분야의 교양적 내용 쓰기조차 경계하는 게 현재 학계 분위기다. 왜 그런지도 안다. 만약 생물학자가 양자역학의 세계를 쓰면 나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다(웃음).
하지만 책에서 밝혔듯 그 역시 필요한 시도다. 이 책은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 모든 것의 이야기지만, 모든 것을 물리로 환원하려는 노력과는 거리가 멀다. 원자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생명체로, 주제의 층위가 바뀔 때마다 완전히 다른 특성, 즉 ‘창발’이 일어난다. 모든 것을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다른 인터뷰에서 “쓰느라 너무 고생했다”라고 한 것을 봤다. 어림잡아 따져도 화학·생물학·지구과학·고인류학·뇌과학·인공지능 등등 방대한 지식을 넘나든다.
〈스켑틱〉이라는 과학 전문 잡지에 했던 연재를 모아서 살찌운 것이다. 2017년부터 4년 정도 연재했다. 스켑틱은 다행히 계간지라서 3개월 정도 간격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다음 호에 ‘생명의 에너지’에 대해 써야 한다 하면 3개월 동안 죽도록 공부하는 거다. 한 권의 책으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연재를 끝내고 출판까지 2년이 더 걸렸다. 과학 전문 잡지니까 어려워도 괜찮다고 해서 ‘찐으로’ 어렵게 썼는데 단행본을 펴내면서 다 바꾸었다. 40~50%는 수정한 것 같다. 비유도 많이 넣고 분량도 두 배 정도 늘어났다. 틀만 거의 그대로지 세세한 부분은 손을 많이 댔다.
물리의 경계를 넘어보고자 쓴 책이지만 역시나 출발점은 원자다.
‘세상 모든 것을 다루겠다’고 하면 불가능한 과업처럼 들린다. 다행히도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돼 있다.’ 나에게, 물리학자에게 단 하나의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이 문장을 꼽을 것이다. 그게 열쇠다.
“자연 상태에서 92번 원자까지 존재할 수 있다. 빅뱅이나 초신성 폭발 같은 자연 현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원자를 말한다. 93번 이후는 인공 핵 합성 기술로 만든 것이다. 현재 118번 원자까지 보고되었다. 대충 말해서 원자번호가 클수록 우주에 존재할 확률이 줄어든다. (···) 우리 몸 질량의 99%는 수소, 탄소, 산소, 질소, 단지 4개의 원자로 되어 있다(53쪽).”
그런데 원자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수소는 1번 원자이다. 수소 원자가 동전 크기라면, 동전은 지구 크기가 된다. 손톱 위에 원자를 놓으면 1억 개를 늘어세울 수 있다. 이처럼 극소한 원자의 세계는 인간의 직관이 통하지 않는다. 도입부가 어려우면 대다수 독자들이 책을 집어던질 수 있다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순서를 바꿀까도 고심했다. 지금 책과는 정반대인 인간, 생명, 물질, 원자 순으로.
탄소와 규소를 비교한 부분을 읽으면 왜 원자로 이 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 원자의 특성이 세상의 형태를 규정한다고.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탄소를 기반으로 한다. 탄소는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을 구성하는 원소다. 탄소 원자가 생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팔이 4개 있어 (정확히는 전자가 6개 있어서) 자유자재로 결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규소도 탄소처럼 팔이 4개 있는 원소이다. 영어로는 실리콘이다. 그런데 만약에 규소 기반 생명체가 되려면 동식물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이산화‘규소’를 주고받아야 한다. 이산화규소는 상온에서 기체가 아니라 고체다. 고체로는 자유로이 물질을 교환하기 어렵다. 규소 기반 인간이라면, 우리가 숨 쉬면서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듯 ‘이산화규소 알갱이’를 쉴 새 없이 입 밖으로 뿌려대거나 수시로 배설해야 할 것이다.
원자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원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음. 원자는 좋아하는 대상이 될 수가 없는데···. 인간의 기준에서 제일 큰 영향을 받는 원자가 뭘까, 이렇게 관점을 잡아본다면 아마 산소일 것 같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변화를 일으키는 원자가 산소다. 산소와 결합된 물질을 산화물이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물질이다. 철에 스는 ‘녹’이 대표적이다.
산소는 양면성 있는 원자로 설명된다. 생명의 기체이지만 독이다.
정확히는 독이기 때문에 생명의 기체가 되는 것이다. 독이라는 건 반응성이 크다는 뜻이다. 반응성이 크다는 건 다른 원자가 지나갈 때 산소가 득달같이 달려가서 결합한다는 뜻이다. 산소는 다른 원자를 너무 ‘좋아한다’. 물리에서 좋아한다는 얘기는 내 쪽으로 당긴다는 거다. 산소는 다른 원자와 결합해 그 원자의 전자를 끌어당기는데 그때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다. 즉 반응성이 크면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초기 지구에는 산소가 많지 않았다. 생명체가 산소를 사용하게 되면서 몸집이 커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인간처럼 수십조 개 세포로 이루어진 거대한 동물은 산소 호흡으로 얻는 막대한 에너지가 없었다면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이 위험물 ‘산소’를 끌어안고 안전하게 세포까지 전달하는 임무를 맡는다. 다른 원자의 전자를 아주 좋아하는 극악한 원자 3개가 있는데 1위가 불소이고, 산소와 염소가 공동 2위다. 염소는 1차 대전 때 독가스로 쓰였다. 불소는 치약에 아주 소량 들어가지만 입에 있는 세균을 다 죽인다.
냉철한 과학 지식인데 삶에 대한 격언처럼 느껴지는 대목이 책 곳곳에 있다. DNA의 대부분은 쓸모없는 부분이지만 ‘잉여’는 진화가 만들어낸 전략이라는 얘기가 인상 깊었다.
DNA가 복제될 때 필연적으로 오류가 일어난다. DNA에 담겨 있는 정보를 단백질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DNA 사슬을 잘라 재배치하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유전정보가 있는 부분을 잘못 자르면 대재앙이 벌어진다. 쓸모 있는 유전정보 사이에 존재하는 쓸모없는 부분을 충분히 두어 이런 오류를 방지하는 것이다. 실제 DNA에서 정보를 담은 부분보다 정보 없는 부분이 훨씬 많다.
‘잉여 시간이 없는 사람은 스케줄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재앙이 일어난다’는 비유를 들었다. 인간 삶에 시사점을 주라고 DNA가 그렇게 움직이는 건 아닐 텐데, 마음을 두드린다.
당연히 아니다. 인간의 과도한 의미 부여. 이 종의 특성이다.
“생명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자로 되어 있지만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다. 생명은 지구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니(지금까지는 지구 밖에서 생명이 발견되지 않았다) 우주 전체를 통해 보면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생명이야말로 부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 물리학자의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면 생명은 더없이 경이롭고 삶은 더욱 소중하다(194쪽).”
‘물리학자에게 죽음이란’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책 중간에 별도로 실었다.
출판사의 ‘신의 한 수’다. 크게 보면 이 책은 무생물을 다룬 1~2부(원자와 우주)와 생물을 다룬 3~4부(생명체와 인간)로 나뉜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는 부분에 에세이가 한 편 들어가면 좋겠다고 해서 예전에 기고했던 글을 다듬어서 줬다. 나는 사실 별로 안 쓰고 싶었다. 저자의 마음가짐이라는 게 원고를 다 넘겼다고 생각하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물리학자에게는 ‘죽음이 디폴트’라는 것이 당연한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 얘기를 제일 많이 한다.
원자나 분자 단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창발이 일어나서 ‘생명’이라는 특별한 상태가 홀연히 출현했다는 것이 놀랍다.
최초의 생명체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마치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처럼. 추론은 하지만 증거가 될 만한 화석이 없다. 생명의 가장 오래된 화석 증거는 35억 년 전 스트로마톨라이트인데, 생명이 없던 상태와 이 화석 사이의 간극이 너무 넓다. 그 사이에 첫 번째 생명체가 무엇이었을지 정말로 너무너무 궁금하다.
과학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외계 생명체 찾기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지구 생물들이 가진 생화학적인 과정이 보편적인 생명의 원리인지, 그걸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데이터를 하나 더 얻는 것이다. 우리, 그리고 다른 곳에서 진화한 생명체. 이렇게 두 개를 비교하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 텐데 공통점이 많다면 보편적인 법칙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외계인들이 지구에 왔다가 노란색 소파를 하나 가져갔다고 치자. ‘왜 노란색이지? 태양과 같은 색이라서? 이 색이 세균에 더 강한가?’ 온갖 추론을 해봐도 모른다. ‘야, 지구에 가서 소파 하나 더 가져와봐’ 해서 가져왔더니 파란색이야. 그러면 게임 끝이다. ‘소파는 그냥 제멋대로 칠하는 거였구나.’
마지막 장은 호모사피엔스, 바로 인간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특별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DNA로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리보솜으로 단백질을 합성하고,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척추를 가지고 있고, 산소호흡을 하고 새끼를 낳아 젖 먹여 키운다. 평범한 포유류의 일종이다. 물론 인간의 뇌는 특별하다. 인간의 대뇌피질은 영장류 가운데 가장 크다. 하지만 뇌라는 기관을 물리적으로 보면 단지 신경세포의 밀도가 높은 곳에 불과하다. 인간도 거대한 생명의 틀 안에 들어가는 존재라는 얘기를 책 전반에 걸쳐서 전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 게 있을까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생각했다. 인간의 문화 아닐까 싶다. 인간은 상상을 하고 허구의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침팬지도 섹스를 해서 새끼를 낳고, 150마리 정도이지만 위계질서가 있는 사회를 이루며, 깍깍거리면서 소통하고 공감하고 거짓말도 한다. 그런데 지폐 하나를 주면서 '이게 바나나 200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런 걸 믿게 할 수는 없다.
문명을 건설한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정말 그런가? 폴리에르구스라는 개미가 있는데 고대 그리스와 비슷한 노예제 사회다. 주로 하는 일은 다른 개미집에 쳐들어가 노예를 잡아오는 것이다. 그 밖에는 자신의 힘으로 먹이를 제대로 집어먹기도 힘들어 노예에게 모든 걸 의존한다. 이거 문명이라고 할 수 없나? 인간 노예제는 19세기 들어와서야 사라졌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예에 가까운 계약을 맺는 경우도 여전히 있다.
기만적일지라도 민주주의 같은 건 인간밖에 못한다.
그것도 따져보면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이 아니라 근대 인간이 해낸 것이다. 300년도 안 되지 않았나. 그런데 민주주의가 인간 본성과 맞는 제도일까? 지금 잠깐 하고 있지만 애써서 일궈가지 않으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본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다음에 중세 암흑기가 왔던 것처럼 말이다. 요즘 좀 두려운 것이 있다. SNS 때문인지 우리가 깊이 생각하는 방법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다. 가능한 위험성 가운데 하나로 민주주의가 약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정한 물리학자’라고 불리곤 하는데.
따지자면 차가운 사람에 가깝다. 〈알쓸신잡〉에 같이 출연했던 유시민 작가가 ‘김상욱에게 배웠다면 물리를 다정하게 대했을 텐데’라고 하는 바람에 ‘다정한’이라는 단어가 제 앞에 붙게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도 자꾸 저를 다정하다고 하니까. 언어가 사람을 규정한다고 본의 아니게 다정하게 행동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가 ‘사랑한다. 사랑한다’ 세뇌했던 것처럼(웃음).
본인이 생각하기에 제일 어울리는 수식어는 뭔가?
날 때부터 물리학자.
우주 만물에 대한 책을 쓴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글쎄. 뭔가 방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화라는 것 자체가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생명체는 그때그때 미친 듯이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저 밖에 있는 작은 벌레와 풀 한 포기라 할지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죽도록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너는 왜 이렇게 일을 열심히 안 해?’ 그런 건 인간이 만들어놓은 기준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현재 온도와 이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귀에서는 노이즈를 다 캔슬링해서 나한테 필요한 정보만 뇌로 올려 보내고, 뇌에서는 상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끊임없이 앞사람 얼굴을 분석한다.
인간을 포함해 자연의 모든 부분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온도가 10℃ 올라가서 인류가 멸종해도 최선의 생명체가 살아남아 진화를 이어갈 것이다. 물론 내가 인간이다 보니 무서운 미래이고, 바라지 않는 미래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고 물었으니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야만 할까’라고 물었다면 답이 달랐을 것이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