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질문사주' 아니라, 법무부장관이니까 물은 겁니다
영부인이 300만원 상당의 고가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받는 모습이 영상으로 찍혀 대중에 공개됐다. 선물을 준 사람에 따르면 대통령 취임 직후엔 축하 인사차 180만원 상당의 다른 선물도 준 적이 있다고 했다. '함정 몰카'라는 비판이 있지만, 누가 선물을 받으라고 했던가. '영부인의 고가 선물 수수'라는 사실은 취재 동기의 불순함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그 자체로 문제다.
국민들은 궁금하다. 김건희 여사가 선물을 왜 받았는지, 어떻게 처리했는지, 대가성이 있는지,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는지 등 밝혀져야 할 의문이 한두 개가 아니다. 최근 영부인의 '고가 선물 수수' 의혹에 대한 고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다. 예단할 순 없지만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뇌물죄 성립 여부 등이 수사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에게 물었다. 질문을 했던 지난 19일 그는 장관 신분이었다. 21일 현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다. 한 전 장관에게 질문을 던진 이유는 당시 법률과 사법을 관장하는 행정 기관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 한동훈 전 장관과의 질문·답변 |
-지난 번에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서 언론에서 잘 안 나와서… =아까 물어보셨잖아요, 그때도 물어 보셨죠? -잘 모른다고 했었는데, 지금 입장은 어떠세요? =민주당이 저한테 꼭 그거 물어보라고 시키고 다닌다고 그러던데요. 여러 군데에다가 공개적으로 -그런 거 아닌데요. =그런데 저는, 이걸 물어보면 제가 왜 곤란할거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이야말로 자기들이 이재명 대표 옹호하는데 바쁘니까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중략) 기본적으로 그 내용들을 제가 보면 일단 몰카 공작이라는 건 맞잖아요. 그 몰카 공작의 당사자인 서울의 소리가 고발했던가요? 그러면 우리 시스템에 맞춰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가 진행돼서 처리될 가능성이 큽니다. |
한 전 장관이 콕 집어 "그때도 물어봤다"라고 한 지적은 지난 6일 질의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 '영부인 선물 수수' 의혹에 대해 그는 "제가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고, 특별히 언론에서도 상세한 보도가 안 나왔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알지 못 한다"고 답했다. 또 '수사 필요성' 질문엔 "너무 가정을 갖고 계속 물어보시면 그건 뭐"라며 즉답을 피했었다.
반면 이번엔 소극적이던 것과는 180도 바뀐 공격적인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답변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민주당이 여러 군데에 물어보라고 시키고 다닌다고 그런다"라는 답변은 민주당의 '질문 사주'에 따라 기자들이 질문하고 있다는 지적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들린다.
이는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언론을 정치인의 하수인쯤으로 생각하는 발상에 가깝다. 한 전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그 스스로가 평소 '고발 사주'와 같은 공작 수사에 심취해 있기 때문에 기자들도 '질문 사주'를 받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온통 세상이 '정언 유착', '검언 유착' 등 카르텔로 뒤범벅 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 기자의 질의가 본인을 곤란하게 하는, 골탕먹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큰 오해다. 한 전 장관이 곤란함을 느낄지 여부는 기자들의 관심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는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여당에 한 전 장관이 '구원 투수'로 각광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반면 일각에서는 '수직적인 당정관계가 낮은 지지율의 핵심 원인인데, 한 장관이 오면 대통령에게 더욱 쓴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론도 분출하고 있었다.
이때 한 전 장관이 김 여사 의혹과 관련한 질의에 "영부인도 예외 없다. 수사는 성역 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천명했다면 이 같은 우려를 잠재울 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인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가치중립적인 질의에 한 전 장관이 스스로 의미를 첨가해 해석하면서 기회를 날린 셈이다.
다음 날인 20일 국회를 찾은 한 전 장관은 이번엔 기자들 질문을 받지 않았다. 그는 "제가 독해졌다. 처음에는 막 부담되서 얘기해 드렸는데, 이제는 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기다리는 기자들이 부담되고 미안해서 질문에 답해줬는데, 이제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기자에게 질의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이 큰 수혜라도 베푸는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 전 장관은 오는 26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다. 정치 무대 첫 데뷔를 집권 여당의 대표로 시작하는 만큼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언론은 기대를 담아 더욱 집요하게 물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로 타석에 선 타자라면, 5천만의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언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서초동 사투리'부터 버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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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서민선 기자 sm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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