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대비는 옛말…기로 선 공인중개사 업계[비즈니스 포커스]

2023. 12.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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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임대차3법 등 악재 수두룩, 응시생도 줄어
중개사 자격증만으로는 부족, 전문성·규모 필요해



불황기 노후 대비 수단으로 인기를 모으며 ‘중년의 수능’이라 불리던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직장인부터 주부까지 “일단 따고 보자”는 분위기에 몇 년간 증가 추세였던 응시생 수가 올 들어 급감했다.

1차 응시생 수가 2021년 부동산 정점과 함께 18만6278명을 기록한 뒤 2022년 17만6016명으로 1만 명가량 줄었다가 2023년 13만4354명에 그쳤다. 특히 전체 응시자 중 20~30대 연령 비중이 하락 추세다. 20대 응시생 비중은 2021년 11.6%에서 2022년 10.8%, 2023년 10.0%로, 30대 비중은 2021년 27.7%에서 올해 2년 만에 26.7%로 소폭 낮아졌다. 

그동안 공인중개사 응시자 수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증감을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번 응시자 수 감소를 두고도 지난해 국내를 강타한 고금리와 자재비 상승에 따른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한 현상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른 기류도 읽힌다. 공인중개사가 더는 수익 확보나 노후 대비에 유리한 직업군이 아니라는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당장에 부동산 거래량 감소 외에도 지난 몇 년간 각종 규제가 축적된 데다 시장 흐름이 변하면서 중개업 환경이 예전 같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명퇴’ 바람에 흥한 중개사 열풍, 인원 적체 지속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 16일 기준 전국 공인중개사 수는 50만3925명에 달한다. 이처럼 공인중개사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 출발점은 1997년 대한민국을 덮친 ‘IMF 외환위기’였다. 내로라하는 대기업까지 줄도산 공포에 명예퇴직 바람이 일면서 종신고용에 대한 직장인들의 기대가 흔들린 탓이다.

당시 공인중개사는 나이와 관계없이 창업이 가능한 데다 프랜차이즈, 식당 창업보다 안정적이고 수익이 보장된 업종으로 재직자와 퇴직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대졸 이상 인력이 부동산 중개 시장에 대거 진입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처음으로 최종합격자 수가 1만 명을 돌파했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때마침 회복 기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과 정부 정책이 기름을 부었다. 정부는 실직자 고용대책 차원에서 2년마다 한 차례씩 치르던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주기를 1999년부터 매년 시행되도록 바꿨다. 중개업소 수도 늘었다. 집값 상승이 본격화하던 2002년 9월 건설교통부에 영업 등록한 부동산중개업자 수는 4만8196명으로 1997년 말 4만1424명보다 16.3% 늘었다.

결국 공인중개사 합격자 수를 조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2004년 제15회 시험의 문제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지자, 수험생들은 시위 등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는 거센 반발에 손을 들고 2005년 5월 제15회 추가 시험을 진행하기까지 했다. 이후 건설 불경기에도 응시생 수는 최소 10만 명, 합격자 수는 8000명 이상을 유지하면서 공인중개사 수는 지금에 이르렀다.


 호황기에도 거래 없어 짐 싸는 중개업소


그러나 정부가 시험 난이도를 올리는 등 다시 칼을 만지작거리는 지금, 시장 반응은 대체로 조용하다. 부동산 중개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탓도 있지만, 현업이 되기 위해 절박한 수험생 또한 그만큼 사라졌다는 뜻이다.

현업 공인중개사들은 부동산이 호황이던 2015~2021년 수익도 시장 분위기에 걸맞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각종 규제가 이어지면서 기대보다 거래가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공인중개사무소를 차렸다가 몇 년 만에 접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든 중개사도 많다”며 “이들 중개사는 다시는 업계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부동산 규제가 풀리면서 집값이 반등했지만, 신규 개업 중개사 수는 폐업 수를 밑돌고 있다.

아파트 거래를 주로 하는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선 2020년 7월 시행된 ‘임대차 3법’이 전환점으로 꼽힌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를 골자로 하는 일명 ‘임대차 3법’의 핵심은 ‘2+2’(2년 계약 만료 뒤 2년 갱신 청구 가능)로 알려진 계약갱신청구권과 계약 갱신 시 임대료를 5% 상한 내에서 증액하도록 한 전월세상한제였다. 이로 인해 전월세 계약기간이 기존 2년에서 사실상 4년으로 길어지며 거래 빈도를 떨어뜨린 것이다.

한 강남구 소재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매수 수요가 많은 인기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는 등의 규제 때문에 매매 거래가 잠겨 아파트 인근 중개사들은 전월세 거래 수수료로 먹고살았다”며 “임대차 3법이 통과된 뒤로 임대차 갱신이 많아졌는데 기존 고객에게 갱신 계약서를 써주면서 수수료를 받기는 어려운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식으며 이미 투기과열지구 지정, 실거주 의무 완화 등 매매 거래 관련 규제는 상당 부분 풀린 반면, 임대차 3법은 앞으로도 크게 개정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협회는 이미 단기적인 전세가 급등, 거래 위축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해당 제도 도입을 반대했다”면서도 “이미 시행 중인 법을 되돌리긴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애매한 권한·의무, 제도 개선 필요해

이 같은 상황에서 전세사기 문제가 터지며 공인중개사에 대한 사회 여론은 악화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11월 8일부터 ‘공인중개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의 세금체납 여부와 확정일자 현황, 임차인의 정보열람 권한 등을 확인·설명하는 의무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 제도 자체가 공인중개사에 대한 신뢰도와 전문성을 보장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격증 적체로 인해 공인중개사가 난립하고 있는 데다 업무 권한과 전문성 또한 담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번에 설명의무에 포함된 ‘국세 및 지방세 체납 여부’ 등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선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에 비해 미국 부동산중개인(Real Estate Broker)의 사회적 지위와 신뢰도, 서비스 질은 국내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선 주마다 다르지만 통상 자격시험 1차 합격 후에 상당 기간 일종의 시보 생활을 거쳐야 2차를 보고 공인중개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미국은 중개 수수료율이 5%에 달하는 등 비용이 높은 대신, 중개사가 감정평가사나 변호사와도 협업해 확실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중개인이 변호사에게 계약서 상담을 의뢰하는 한편 건축 전문가를 불러 기초공사, 건물구조, 상하수도 등 중대 대상 시설 전반에 대한 검사(Inspection)를 진행하도록 한다. 이 보고서는 해당 매물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는 금융기관과 에스크로(escrow)에 전달된다.

이와 달리 국내 공인중개사들은 치열한 매물 확보와 수수료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다. ‘반값 수수료’를 내세운 프롭테크 플랫폼과의 경쟁에 더욱 민감한 이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인중개사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자리한다. 이 개정안은 현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화하고 이 단체에 대해 공인중개사 징계권을 부여하며 부동산 거래질서 교란행위 단속 업무를 위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프롭테크 기업들은 개정안을 두고 ‘부동산판 타다금지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거래질서 교란행위 단속에 대해서는 프롭테크 플랫폼에 올라온 매물을 거래하는 등 자사와 협업하는 공인중개사들이 불이익을 받는 등 협회가 카르텔 기능을 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 속에 시장은 이미 양극화로 접어들고 있다. 정보화와 고객 선호도에 따라 전통적인 ‘고령의 동네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는 추세다.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특화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상업시설이나 고급주택 전문 중개법인과 프랜차이즈도 늘고 있는 추세다. 에듀윌을 비롯한 사설기관과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경매, 분양, 임대관리 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협회 관계자는 이 같은 강의에 대해 “경쟁이 워낙 심화하다 보니 회원들 사이에서 민간자격자 자격증도 수요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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