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 추월당하지 않으려면 창의적인 기사 쓰기 필요”
한겨레말글연구소(소장 이봉현)가 마련한 연구발표회가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렸다. ‘인터넷에서 인공지능으로, 소통은 어떻게 달라지나?’를 주제로 한 이번 발표회에서는 갈수록 에스엔에스(SNS)를 통한 대화의 비중이 커지고 인공지능 글쓰기가 등장해 글쓰기 환경이 크게 바뀌는 시대에 개인 간, 세대 간 소통이 잘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놓고 토론했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인 김진해 경희대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의 신문 글쓰기’를, 박창식 ‘뉴스토마토’ 객원논설위원은 ‘에스엔에스 글쓰기 개선하기’를 발표했다. 또 이성민 작가는 평등한 대화의 새로운 방법으로 ‘평어 쓰기’를 제안했으며, 이경우 미디어언어연구소장은 ‘신문의 로마자 약칭’이 지닌 문제점을 짚었다.
김진해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에 신문의 문체가 달라져야 함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평어로 진행하는 강의’를 취재하고 쓴 세 일간신문의 기사를 사례로 든 뒤, 챗지피티가 쓴, 같은 내용의 기사와 견주어보았다. 세 신문의 기사는 내용이나 구성에서 대동소이했다. 반면에, 같은 정보를 주고 ‘실감 나게’ 써보라는 주문을 받은 챗지피티 기사는 신문 기사보다 오히려 더 창의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챗지피티는 ‘평범한 하루가 아니었다’, ‘존댓말이 낯설어졌다’ 같은 평가를 구사해 그럴듯한 기사를 써냈다. 평어 사용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소통’이고, 평어 사용을 통해 ‘새로운 학문적 모험에 도전하며’, ‘파급효과가 기대된다’고까지 썼다.
김 교수는 세 신문의 기사에서 “자신의 관점, 관찰, 질문 그리고 인물과 사건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며 “특히 기사 자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재미와 감동이 없는” 기사로는 “인공지능한테 추월당하고 말겠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에 신문 기사가 살아남으려면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되 그 진실을 어떤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사 쓰기의 방식으로 기자의 개성이 담긴 문체를 구사해 사실을 내러티브(이야기)로 엮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참사를 예로 들어, 독자에게 슬픔과 비통함이라는 감정을 경험하도록 만듦으로써 ‘심리적 반응’을 이끌어내도록 기사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도 김 교수의 제안에 공감을 나타내면서 한국 언론의 객관주의에 대한 오해를 지적했다. 한국 언론은 객관주의를 취재원에 대한 ‘등거리 유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올바른 객관주의는 ‘취재원의 심연으로 들어가되 공사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첫째 무조건 다르게 쓸 것, 둘째 반드시 읽도록 만들 것을 기사 쓰기 지침으로 내놓았다.
박창식 위원은 ‘에스엔에스 글쓰기’를 개선할 방안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과거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글로 소통하게 된 만큼 글쓰기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박 위원은 ‘에스엔에스 글쓰기 개선 방법’으로 첫째 응답하는 글쓰기, 둘째 구체성을 담은 글쓰기, 셋째 대화를 독점하지 않는 글쓰기, 넷째 공동공간임을 생각하는 글쓰기, 다섯째 에스엔에스 소통의 한계를 아는 글쓰기를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온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에스엔에스 글쓰기가 소통에 실패하는 이유’를 살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글을 읽고 쓰는 일은 문턱이 낮아지고 편리해졌지만, 배경과 맥락을 무시한 읽기와 쓰기가 확산하면서 소통의 실패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구 소장은 지적했다.
‘평어와 대화’를 발표한 이성민 작가는 평어는 단순히 ‘반말’이 아니며 대화 상대방을 존중하는 ‘예의 있는 반말’이라고 규정했다. 평어는 존비법 체계가 발달한 한국어와 이 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인의 일상 언어 생활과 어긋나는 면이 있기에, 평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이 필요함도 강조했다.
이경우 소장은 ‘신문의 로마자 약칭’이 과거 납활자로 신문을 찍어내던 시대의 ‘언어 유산’이라고 지적했다. 좁은 지면에 많은 정보를 담으려다 보니 ‘텔레비전’을 ‘TV’로, ‘경제협력개발기구’를 ‘OECD’로, ‘국제민간항공기구’를 ‘ICAO’로 써 버릇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로마자 약칭은 정확히 대상을 가리키지 않아서 불분명할 때가 많고, 특정한 사람들만 알 수 있어서 공정하지도 않고, 독자가 많이 쓰는 표현도 아니고, 일방적이어서 민주적이지도 않다”며 약칭을 쓰려면 ‘세계무역기구’를 ‘무역기구’로 줄이는 식으로 우리말을 줄여 쓰자고 제안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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