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오바마가 그토록 아낀 작가의 ‘그래도 살아라’

임인택 2023. 12. 2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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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작가 매릴린 로빈슨
믿음·치유·축복의 ‘길리아드 3부작’
완결편…비종교인 라일라 주인공

“피투성이더라도 살아라”
이유와 과정의 아름다운 서사
1980년 데뷔 이래 장편이 5편에 불과한 미국 작가 매릴린 로빈슨(80). 퓰리처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을 받았다. 그의 팬을 자처해온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사진 왼쪽)은 2015년 9월 아이오와 방문 중 주립도서관에서 작가를 직접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대담을 나눠 화제를 낳았다. 연합뉴스

라일라

매릴린 로빈슨 지음, 박산호 옮김 l 은행나무 l 1만9000원

성탄절을 앞두고 선택한 소설은 미국 작가 매릴린 로빈슨(80)의 ‘라일라’다. 국내 초역이다. 맞다, 크리스마스엔 매릴린 로빈슨도 있어야 한다. 화려한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는 “기독교적 휴머니스트”로서 주로 가족 소설 양태로 근원적 고독과 존재의 의미, 선한 공동체에 대한 기대를 형상화해왔다. 전직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가장 열렬한 팬을 자처해 온 이유다.

2014년 출간된 ‘라일라’는 미국의 20세기 전중반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가난과 배반, 고독과 상실이 불멸하는 시대로 소설의 유효 거리는 기꺼이 확장된다. 게다가 ‘라일라’는 전작 소설 ‘길리아드’(2004), ‘홈’(2008)과 함께 인물 배경을 공유하는 ‘길리아드 3부작’의 완결편으로, 감춰둔 서사를 서로 들추고 연결지어 무장 팽창한다. 물론 이어보지 않아도 된다. ‘라일라’가 완결이고 시작이라 쳐도 무방하다. ‘길리아드’가 종교적 불신과 신념, 무한한 헌신을 열쇳말로 한다면, ‘홈’은 의심과 방황, 무한한 용서다. ‘라일라’는 그 모두의 결과이자 그 모두의 연원이겠다. 두 작품에 견줘 종교 밖 가장 멀리 있던 인물이 ‘라일라’이기 때문이다. 라일라는 히브리어로는 밤을 뜻한다.

신앙을 모르던 라일라가 성인이 되어 필사하는 다음의 대목으로 이 소설을 견인해볼 만하다.

“네가 태어난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주지 않았고, 네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기지도 않았다. 아무도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지르지 않았고, 포대기로 감싸주지도 않았다.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아무도 없었으므로 너를 동정하여 이렇게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네가 태어난 날 너를 반기는 사람이 없어 너는 들판에 버려진 것이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것을 보았고 내가 너에게 말했다. 너는 피투성이더라도 살아라.”(에스겔서 16장 4~6절)

라일라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로부터 집밖에 내쫓긴 너댓살 여자아이였다. 춥고 긴 밤, 부랑자 여성 달(Doll)이 제 숄로 감싸 라일라를 데리고 간다. 아이는 “달의 품에서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동시에 달의 목을 꼭 껴안은 채 죽어라 매달”린다. 달은 떠돌며 품을 팔아 아이를 먹여 키우고, 위험을 무릅쓴 채 한 마을에 1년 머물며 ‘평이한 삶’과 제도 교육을 경험시키기도 한다. 납치이지만 구조이고 죽임인데 살림이다. “피투성이더라도 살아라”는 달의 다짐이면서 라일라에게 새긴 삶의 지표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인과 아이의 이야기는 그렇게 라일라(밤)로부터 시작된다.

수난을 운명처럼 안은 라일라는 성장하며 묻고 또 묻는다. “세상의 어떤 일들이 왜 그렇게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말이다. 거듭 버려지며 “아무도 믿지 않”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 라일라가 더더욱 “진짜 당신을 하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한 이와 부부연을 맺어 새 생명을 보듬기까지를 소설은 얼개 삼지만, “왜 그렇게 일어나는지” 비관하는 라일라가 “어떤 일이 일어났든 간” 감당하려는 라일라로 전이되기까지의 신산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정이 실체다. 끝에 사랑이 있다. 여기서 “믿을 수 없”던 그 당신이 ‘길리아드’의 주인공 존 에임스 목사다. ‘길리아드’에서 라일라는 신비로운 여성으로만 비춰졌다. 에임스의 종교적 희생, 사무친 슬픔과 고독에 ‘응답’한 라일라의 진짜 내막이 10년 뒤 펼쳐진 셈이다.

퓰리처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을 받은 미국 작가 매릴린 로빈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소설을 기독교적 관점으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 종교는 양식이고, 성경이 그러했듯 현실을 투사하고 해석시키는 ‘우화’다. 성경의 구절들로 라일라는 과거를 상기하고, 현실을 묻는다. “…하나님에게 정말 그런 힘이 있다면, 왜 아이들이 그런 학대를 받게 놔두죠?” 답을 주지 못하는 데서 종교의 한계는 되레 명확해지는 반면, 공동체의 양식과 도리가 부감된다. 이는 2014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첫 방한한 작가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길리아드’를 “선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희망과 이로 인한 실망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공간”으로 이른 맥락과 닿아 있다.

라일라가 여러 성경 중 남편의 말마따나 “슬픔이 아주 많이 깃들어 있”다는 에스겔서에 매료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슬프더라도 상관없다. 적어도 에스겔(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대교 선지자) 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 . …에스겔은 그 소리를 알고 있다 . 말씀도 없고 언어도 없다 … . ” 자신이나 달과 같이 “ 아무것도 아닌 존재 ” , 그 존재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바로 에스겔서가 담고 있기 때문이다 .

라일라에게 존엄을 희망하게 한 이는 70대 목사 남편 에임스다. 동시에 라일라에게 생명을 희망하게 한 이는 “절대 교회에 가지 않았”던 달이다. 라일라는 신앙 안팎의 그 둘을 살린다.

‘니체적 인간’이 요원하다면 ‘라일라적 인간’ 또한 가깝지 않다. 다만 온전히 개인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모색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라일라적 인간은 가장 현실적인 이상일지 모르겠다.

그때 희망을 걸 수 있는 세계의 모양이란 무엇일까. 상처도 주지만 라일라의 삶에 개입했던 이들을 가리키며 되뇌는 말이 있다. “…그들 모두 받은 만큼은 주는 사람들이었고, 그 셋 중 누구도 다른 사람은 가질 권리가 없는 좋은 것들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었다.”

그 공동체에서 되살아날 라일라를 예고하듯, 소설을 견인했던 에스겔서 구절은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이어져 왔다. “그러고는 내가 물로 너를 씻어주었다. 그렇다. 내가 물로 네 몸에 있는 모든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발랐다.”(16장 9절) 삶은 본래가 수형인가. 그렇다면 죽음으로 삶이 명료해지듯 수난을 통해 삶은 숭고하게 부활한다.

감상뿐 아니라 해석이 실로 풍부해지는 소설이다. 집시나 인디언을 미개화하며 제 존엄을 확보하려는 달이나 70대 목사와 젊은 여자의 관계 또한 그렇다. 그 매릴린조차도 2020년 9월 ‘가디언’에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강성 지지층을 두고 “너무 충격적이다. 그의 토대(base)는 내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길리아드’ 속 인물이 등장하는 또다른 소설 ‘잭’ 출간이 계기인 인터뷰에서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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