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가슴에 하얀 눈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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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송년 모임에서 수녀 한분이 다가와 물으십니다.
"이 시인은 종교가 있나요?" 저는 없다고 대답합니다.
"이 시인은 종교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 안에요." 수녀님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제 가슴께였습니다.
종교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어떤 신의 믿음 같은 것이 제 안에 자라고 있다고 믿고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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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송년 모임에서 수녀 한분이 다가와 물으십니다. “이 시인은 종교가 있나요?” 저는 없다고 대답합니다. 제 책을 여러권 읽으셨다는 수녀님이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이 시인은 종교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 안에요.” 수녀님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제 가슴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둑어둑한 길, 날은 정말 추운데 수녀님의 말씀을 떠올리니 화롯불 하나 품고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종교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어떤 신의 믿음 같은 것이 제 안에 자라고 있다고 믿고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한그루. 그곳까지 걸어가보기로 마음을 먹으니 도시의 불빛이 유난스럽다 싶게 환합니다.
어디에선가 읽은 글입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트리 주변에 포장된 선물 상자들을 장식해놓았는데, 어떤 아이가 그걸 몰래 집까지 들고 와 포장을 열어보니 벽돌 하나가 들어 있더라는 이야기, 그 아이가 직면해야 할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게 됐을 거라는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윤갑수 시인이 그려낸 이 따뜻한 풍경과 겹쳐서 카드를 쓰고 또 받던 시절이 기억 속에서 피어납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카드의 흰 종이 칸을 채우는데 몇 줄을 채우지 못해 손에 땀을 쥐었던 때. 그리고 ‘눈이 오면 우리 만날까?’라고 전하지 못했던 마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요?
무작정 거리로 나가고 싶다는 시인의 말에 나도 용기를 내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약간의 용기를 낸 다음,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만날 사람 하나 있다면 참 고마운 일이겠습니다.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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