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어떻게 무청처럼 영양가 있는 사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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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가 돼서 밤늦도록 글을 쓴 후 아침잠에 취한 내 꿀잠을 깨우는 건 시끄러운 새소리.
아침부터 몰려다니는 물까치들 소리.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요 녀석들이 뒤란 처마 밑에 줄을 띄워 걸어둔 무청 시래기에 매달려 있었어.
훠이, 훠이, 요놈들! 인기척을 느낀 물까치들이 후다닥 날아올라 돌담 너머 뒷집 밤나무 위에 앉아 깍깍깍깍∼. 그 깍깍대는 소리가 혼자 먹지 말고 같이 나눠 먹자는 소리처럼 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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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가 돼서 밤늦도록 글을 쓴 후 아침잠에 취한 내 꿀잠을 깨우는 건 시끄러운 새소리. 아침부터 몰려다니는 물까치들 소리. 청회색의 긴 꼬리가 아름다운 이 새들이 몰려들어 우짖으면 일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네. 너무 시끄러워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내다보면, 뒤란에 버린 음식물 찌꺼기를 쪼아 먹는 고마운 청소부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요 녀석들이 뒤란 처마 밑에 줄을 띄워 걸어둔 무청 시래기에 매달려 있었어. 우리 식구들 겨울 양식 하려고 매달아 말리는 무청까지 먹어치우려는 듯.
벌떡 일어나 뒤란으로 달려갔지. 훠이, 훠이, 요놈들! 인기척을 느낀 물까치들이 후다닥 날아올라 돌담 너머 뒷집 밤나무 위에 앉아 깍깍깍깍∼. 그 깍깍대는 소리가 혼자 먹지 말고 같이 나눠 먹자는 소리처럼 들렸어.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옆지기가 나와 뭔 일이 있냐고 물었지. 물까치들이 무청 시래기까지 쪼아 먹으려고 덤빈다고 했더니, 아, 고놈들! 좋은 건 귀신처럼 안단 말이야. 그냥 두면 안되겠네요. 무청이 이제 꾸덕꾸덕 말랐으니, 걷어줘요. 오늘 가마솥에 불 지펴 삶아야겠어요.
옆지기는 무청 시래기를 영양가 높은 식품으로 여겨, 늦가을 무를 뽑을 때 무청을 한잎도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 시래기를 엮어 매달고 남은 누런빛 무청도 항아리에 넣고 소금으로 절여둘 정도로 아끼는데, 기후변화로 먹을 게 귀해지는 시절이라 시래기 한이파리도 버릴 수 없다고.
오늘날 이상한 희귀병이 많은데 시래기 같은 천연식품을 먹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 옆지기의 주장. 한 약초학자의 책을 통해 시래기가 파킨슨병에 특효라는 걸 듣고 이웃에 그 병을 앓는 노인이 있어 전해주었지만 귓등으로만 듣고 말더군. 주로 병원에서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에 의존하는 현대인들은 시래기 같은 천연식품을 무조건 깔보지.
나는 곧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가마솥을 깨끗이 닦아 녹을 제거하고, 장작을 패고 불을 지펴 시래기 삶을 물을 끓이기 시작했지. 하얀 김이 퐁퐁 나오고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솥에다 시래기 타래를 집어넣었어.
약한 불로 두어시간쯤 삶았을까. 불붙은 장작을 꺼낸 뒤 물이 식기를 기다렸지. 물이 다 식은 뒤 옆지기가 다가와 시래기를 건져내며 말했어. 참 신기하죠. 벽에 매달려 찬 바람에 시달린 시래기를 삶아주면 영양가가 높아지니 말이죠.
난 옆지기의 말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평생 숱한 고통과 시련의 바람을 맞으며 시래기보다 더 시달린 나는 왜 이 나이 먹도록 영양가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왜 지혜가 풍부해지지 못하고 슬기가 쑥쑥 자라지 못했을까….
시래기를 삶고 난 다음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시래기된장국 끓이는 냄새가 집 밖까지 솔솔 새어 나오곤 했어.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시래깃국, 겨우내 자주 끓여 먹겠지. 내가 씨 뿌려 키워 정성껏 말린 시래기라 더 애착이 가니까.
사실 우리가 무엇을 먹든, 먹는 행위는 꼭꼭 씹어 대지와 하나가 되는 일. 장독대에 쌓인 눈과 이마에 얹히는 햇귀와 함께 식탁에 앉아 숟가락질하며 오늘도 골똘히 생각하는 건, 어떻게 하면 무청처럼 영양가 높은 청청한 사람이 될까!
고진하 시인·야생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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