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대통령의 당’이라서 문제가 아니다

윤태곤 정치칼럼니스트 2023. 12. 2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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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도 여당 재편
동지 쳐내고, 적과도 손잡았지만 그때마다 미래 비전 제시하고 대중에게 더 가까이 가 설득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여당을 자기 당으로 만들면서 어떤 명분·가치 보여주고 있나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뉴시스

작년 6월 지방선거 대승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보면 다음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멀쩡한 여당 대표를 어거지로 축출했다.” “무리수를 써서 새 대표를 세우더니 다시 끌어내렸다.” “최측근을 비대위원장으로 밀었다.” 대통령이 여당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자기 중심으로 여권을 재편했다는 이유만으로 윤 대통령을 비난하긴 힘들다. 전임자들도 전부 다 그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함께 목숨을 건 ‘쿠테타 동지’이자 자신을 여당 후보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평생 친구를 거세하고 백담사로 내몰았다. 그러고 나서 3당 합당을 통해 새 그림을 그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임자 노태우를 전두환과 묶어 사법 처리하고 민자당을 깬 후 신한국당을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요구한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해 김대중과 차별화를 시작하더니 아예 새천년민주당을 뛰쳐나와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예 이명박이라는 현직 대통령을 누르고 소속 정당을 장악해 대선 후보가 되기 전에 당명까지 바꿔버렸다.

이에 비하면 이준석 축출은 사실 별일도 아니다. 본인이야 젊은 지지자들을 유입시켜 국민의힘을 일신했고 대선에 공이 크다고 자부하지만 윤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이 입당하기 불과 한 달 반 전에 대표로 선출됐다는 이유로 경선과 본선 과정 내내 자신을 거칠게 견제하던 모습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 대통령 취임 후 친정 체제 구축은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다. 지난 1년 반이 그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이전의 대통령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전임자들은 권력 지도를 새로 그리는 과정에서 민의를 수용하고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 더불어 절묘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전두환 정권의 겸손한 2인자였던 노태우는 집권 직후부터 불어닥친 민주화의 열풍과 여소야대의 압박을 전임자 전두환에게 전이시켰다. ‘5공 청산’이라는 야당과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고 국정 운영 전반을 민주화하면서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됐다. 이런 점에서는 노태우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가 김영삼이다. 민주 투사에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 후보로 변신해 집권한 그는 3당 합당의 원죄, 군부 정치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야당과 국민의 요구가 커지기도 전에 먼저 움직였다. 하나회 해체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명분과 실리가 가장 완벽하게 일치한 장면이다. 영화 ‘서울의 봄’ 천만 돌풍 앞에서 국민의힘이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이 다 김영삼 덕이다. 노무현은 전국 정당화, 지역주의 해소, 3김 정치의 완전한 청산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대통령들은 그 과정에서 인재풀도 늘렸다. 노태우는 군 출신 대신 박철언·김종인·사공일·현홍주 등 정무적 감각을 갖춘 엘리트 테크노크라트를 전진 배치했고, 이들은 경제와 외교 양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김영삼은 민정계 일부를 흡수하는 동시에 이재오·김문수·정의화·홍준표 등을 정치판에 데뷔시켜 새 판을 짰다. 노무현은 86그룹을 대규모로 내세워 정치권의 연령대를 낮추고, 김진표·이용섭 등 중도 보수 성향의 관료들을 끌어안았다..

선혈이 낭자했고 배신자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대통령들은 미래의 비전과 과거 청산의 명분을 하나로 묶었다. 동지를 쳐내는 대신 어제의 적과 손을 잡았다. 노태우는 전두환보다, 김영삼은 노태우보다, 노무현은 김대중보다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설득했다. 그냥 힘으로만 밀어붙인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여당을 자기 당으로 만든 것만 똑같다. 내세운 특별한 명분이나 가치는 없다.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외교 방향 전환 등이 전 정부와 차별점이지만 여당 재편과는 관련 없다. 야당이 발목을 잡으니, 개혁을 해야 하니 여당을 일사불란하게 재편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긴 했다. 그런데 이른바 3대 개혁이라는 노동·교육·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개혁안이 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들이 전면에 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국정 철학이 뭔진 잘 모르겠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이념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많이 들었다. 인재풀? 이태원 참사의 이상민 장관과 잼버리의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현 정부의 최장수 각료라고 한다.

이대론 안 된다. 총선에서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모든 대통령은 결국 전임 대통령이 된다. 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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