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박정희를 지지한다면 노무현센터를 보라
보수가 배울 건 ‘추앙 노하우’… 재정 자립, 프로그램이 관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과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를 둘러봤다. 박정희기념관에서는 4인 가족 한 팀을 봤고, 노무현 공간에서는 20, 30대 수십명을 봤다. 큰 의문을 갖게 됐다. 왜 압도적 업적의 박정희 공간이 그토록 썰렁할까. 이것은 박정희의 실패인가, 진영의 게으름인가.
1997년 대선 직전, 후보 김대중은 ‘박정희기념관’을 약속하고 취임 후 박정희기념사업회명예회장도 맡았다. “김대중 그릇이 크다”는 칭송이 나왔다. 2005년 7월 김종필이 다른 말을 했다. “1997년 11월 김대중 후보가 내 손을 잡으면서 (DJP연합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과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건립을 약속했으나 허사였다. 김대중씨에게 속았다.” 그해 3월 노무현 정부는 사업회가 자기부담금 확보에 실패했다며 국고보조금 취소결정을 내렸다. 2009년 정부가 최종 패소했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 예산으로 기념관과 도서관이 순차적으로 개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고건·박원순의 서울시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박정희 공간을 만들려고 애썼다. 지지자들이 원한 서울 용산 대신 허허벌판인 난지도 시유지를 제공했다. 동상 건립 계획을 내면 ‘근현대 역사인물동상 건립기준’을 급조해 합법적으로 방해했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지난해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에 박정희(난지천공원,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정류장)를 넣었다. 내친 김에 일반 버스정류장 이름을 바꿔달라고 서울시에도 요청한 상태다. 서울지하철공사는 규정을 들어 눈에 잘 띄는 ‘안내판 설치’를 거절했다.
서울시청에서 버스로 50분 거리의 박정희기념도서관. 건물은 웅장하고, 전시물도 상당하다. “대한민국 전(全) 국토가 박정희 전시장”이라는 말을 축약한 공간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을 발명한 박정희를 거기서 본다.
그런데 대한민국은커녕 서울시민도, 마포주민도 그게 거기 있는지 모른다. 은퇴한 직장인이 전 재산을 털어 산골에 지은 대형 별장 같다. 사람 없어 썰렁한데, 여기저기 고장 나고 유지비만 들어가는 애물단지. 박정희, 최규하, 김대중 세 전직 대통령의 기념시설이 들어선 마포구는 지난달 구(區)예산으로 전직 대통령 관련 시설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일단 급한 불이 꺼졌으면 좋겠다.
노무현 시민센터에 온기가 도는 건 ‘사람’ 때문이다. 창덕궁이 보이는 입지, 정오 요가, 영화상영, 서가형 인테리어 때문에 노무현에게 관심 없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끌린다. 공간을 환경, 여성, 웰빙 같은 대중 키워드로 포장하는 기술까지 썼다. 국고(30%)와 시민기부금을 모아 땅부터 산 게 탁월했다. 정치 공간이 되어도 지자체가 간섭할 근거가 없다. “김해에는 추모공간, 서울에는 시민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12년을 준비했다”는 노무현재단의 설립의 변(辨)에서 치밀함을 본다.
박정희 기념물 중 가장 인상적인 건 가위였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한강대교 개통식’ 등 역사적 현장에서 경축 테이프를 잘랐던 수십 개의 가위. 박정희는 가난, 전근대, 푸념 등 낡은 모든 것을 끊었다. 그 ‘가위 정신’을 그를 추앙하는 방식에도 적용하면 좋겠다.
소액 기부자를 모아 동상 대신 땅과 프로그램에 투자해야 한다. 놀면서 시위하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땀 흘리는 보수 시민의 놀이터가 되고 유치원이 되고, 혁신에 성공한 이들이 자기 노하우를 대중과 공유하는 그런 공간. 한마디로 ‘스며드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스며들기’가 좌파의 전유물일 이유가 없다.
“임자, 동상은 필요없어. 내가 바라는 건 추앙이 아니야.” 그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연말 보너스가 나온다니, 적은 돈이나마 기부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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