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공적개발원조, 사공이 너무 많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부산이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서, ‘공적개발원조(ODA)’라는 생소한 개념이 소환됐다. 저개발국 오지에 공짜로 다리를 놔주거나 개발도상국 철도 사업비를 저리로 빌려주는 대가로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한국의 ODA 사업은 올해로 36년째인데,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당초 정부·여당은 올해 4조5000억원인 ODA 예산을 내년 6조5000억원으로 2조원 늘리려 했는데,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6조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늘리기로 최근 가닥이 잡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쥐꼬리’ ODA를 늘려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윤석열 정부의 엑스포 유치 실패 책임론을 물고늘어진 야당의 몽니를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국민총소득 대비 ODA 예산 비율(0.17%)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공여국 가운데 뒤에서 셋째다. 하지만 정부·여당도 고용노동부 한 해 예산(6조1800억원)에 맞먹는 수준으로 불어난 예산을 제대로 쓸 준비가 돼 있는지 묻고 싶다. ‘양’ 못지않게 ‘질’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원조 현장이나 세종 관가에서 만난 전·현직 담당자들에게 ODA 현주소를 물어본 결과, ODA 예산을 10조원이나 20조원으로 늘려도 ‘파리의 굴욕’이 되풀이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ODA는 중구난방으로 쪼개져 있었다. 먼저 기획재정부·수출입은행의 유상 원조와 외교부·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무상 원조 간 힘겨루기는 오랜 논란거리다. “저리로 돈을 빌려줄 테니 사업권을 한국 기업에 달라”는 유상 원조 집단과 “공짜로 학교를 지어줄 테니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무상 원조 집단이 현지 프로젝트나 관련 기구 설립을 두고 수시로 잡음을 일으키면서 눈총을 산 지 오래다.
‘경기도형 평화 ODA’ 등 광역자치단체 ODA부터 ‘성남시 이매1동 베트남 ODA’ 등 주민센터 ODA까지 지자체도 수시로 가세,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는 뒷전이 됐다. 한 전직 대사는 “현장에서 뛰는 코이카나 수출입은행 직원은 한둘인데, 프로젝트 이후 온갖 기관장들이 와서 사진 찍고 생색 낸다”고 했다. 사방의 생색 내는 사람들을 조율하라고 국무조정실 산하에 개발협력국이라는 국장급(2급) 조직이 있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가 취한 조처는 이 국을 실장급(1급)인 국제개발협력본부로 격상했을 뿐, 잡음과 소음은 여전하다. 일하는 사람은 소수인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만 여럿인 ‘가분수’ 상황을 관가에서는 “(보고서 쓰는) 검정 펜은 하나인데, (첨삭하는) 빨강 펜만 아홉”이라고 자조한다. 한국 ODA가 딱 이런 상황이다. 경제 사정에 맞게 예산도 늘려야 하지만, 당장은 돈을 제대로 쓰는 일사불란의 시스템부터 정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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