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현의 예술여행] [7] ‘소멸의 강’ 갠지스
여행을 좋아하지만, 인도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함께 여행하는 선배가 건네준 책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영국 작가 제프 다이어가 쓴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라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취재하면서 느낀 세속의 욕망과 인도 바라나시에서 체류하면서 얻은 영적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16세기 이후 현세의 허영과 삶의 유한성을 경고하고 겸손을 강조하고자 그린 서양의 ‘바니타스(Vanitas)’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몇 번 찾은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떠올리며 초반부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정작 책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후반부 주인공이 머물렀다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뷰 호텔이었다. 실재하는 곳이었다. 주인공은 그 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이른바 구도자(시니컬한 느낌의 히피일 수도)처럼 변화하는데, 그 장소가 궁금했다.
호텔에 대한 호기심으로 뉴델리행 비행기에 올랐다(무릇 이런 게 여행이다). 선배와 함께 곧바로 바라나시로 향한다. 끊임없는 경적 소리와 최악의 교통 상황을 뚫고 도착한 갠지스 뷰 호텔은 여타 관광지 호텔과 다르다. 갠지스강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투숙부터가 기묘한 경험이었다. 주인공이 이해가 될 정도로. 호텔은 아시 가트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트(Ghat)는 계단이라는 뜻이다. 책에서는 피상적으로 다가왔던 가트가 갠지스 강변에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맞은편 강변은 가트가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가트는 대부분 18세기 무렵 건설되었는데, 6km에 걸쳐 84개가 늘어서 있다. 모두 이름이 있다. 사람들이 갠지스강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왕가와 개인, 단체가 건설한 것이다. 각 가트 위에 독특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가트를 주로 돌아다녔는데, 마니카르니카 가트의 화장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여행자 대부분이 겪는 일이다). 인도인에게 갠지스강은 신성한 강으로 실제로 다양한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는다. 산 자든 죽은 자든 갠지스 강물에 닿으면 모든 죄가 사라져 윤회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소설에서 주인공은 갠지스강을 “소멸의 강”이라고 표현한다.
연말이다. 갠지스강의 소멸처럼, 올 한 해 나쁜 기억, 경험이 소멸되길, 그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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