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베테랑의 부활, 비결은 ‘마음 관리’
서른네 살 양희영에게 2023년은 오래 기다려온 선물 같았다. 지난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4년 9개월 만에 우승을 추가했다. 최다 우승 상금 200만달러(약 26억원)가 걸린 대회였다. 2008년 투어 데뷔 이후 가장 높은 시즌 상금 랭킹 2위(316만5834달러·약 41억원)에 올랐다. 곧장 Q스쿨로 이동해 동갑내기 친구인 미국 교포 제니퍼 송 캐디로 나섰는데, 제니퍼 송이 다음 시즌 출전권을 따내면서 더욱 뿌듯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16번째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양희영은 벌써 미국에서 다음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최근 통화에서 “사람들이 축하해주는데 내가 뭘 한 건지 한동안 믿어지지가 않았다”며 “진짜 큰 보상을 받은 느낌”이라고 했다. 올 시즌 활약으로 투어 통산 상금 랭킹 11위(1388만2919달러·약 180억원)로 올라섰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박인비(35·4위·1826만2344달러·약 238억원) 다음이다. 박인비는 통산 21승을 올렸고, 양희영은 지난달 우승이 통산 다섯 번째였다. 양희영이 얼마나 오래,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해왔는지 알 수 있다. 세계 랭킹은 16위로 한국 선수 중 넷째. 2016 리우(4위) 이후 8년 만에 내년 파리에서 두 번째 올림픽 출전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양희영은 2006년 당시 최연소 기록(만 16세)으로 유럽 투어 우승을 차지하며 기대를 받았다. “어렸을 때는 LPGA 투어 오는 것이 목표였고, 와서는 잘하는 게 목표였어요. 쉬는 날 없이 운동만 하다 보니 금방 벽에 부딪혔죠.” 20대 초반 번아웃이 오면서 부모에게 ‘골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극복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 골프 밖에서도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암벽을 탄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하고 싶은 걸 하고 골프로 돌아오면 집중이 잘 되고 의욕도 커졌어요.”
양희영은 우승 문턱에 누구보다 많이 가봤다. US여자오픈에선 준우승 2번, 3·4·5위를 1번씩 했다. “모든 것을 다 컨트롤 하려 했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3년 전부터 멘털 코칭을 받고 꾸준히 명상을 해온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최고 실력을 갖춘 선수들 사이에서 결과를 가르는 것은 결국 멘털이라고 봤다. “체력 훈련으로 몸을 키우는 것만큼 마음 관리가 정말 중요하더라”고 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훈련을 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경기할 때 경직되지 않고 골프가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지난해 찾아온 부상도 이겨냈다. 어깨와 등을 강화하려고 클라이밍을 하다가 왼쪽 팔꿈치를 다쳤는데 샷을 할 때 임팩트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 겪어본 심각한 부상에 2022시즌 상금 랭킹 58위로 떨어지면서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지 않고, 웃는 얼굴을 새겨 넣은 흰 모자를 쓴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경험이 쌓이니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구나’ 버티는 힘이 생겼어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건 다 하되, 한 걸음씩만 내디뎌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양희영은 US여자오픈에선 꼭 우승해보고 싶다고 했다. 2016년 올림픽이 영광스러운 골프 인생 하이라이트였다며, 또 한 번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뿐이에요. 이제는 골프 자체가 재미있고, 준비한 내용과 과정에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면 충분해요. 전에는 우승이 적어서 많이 아쉬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꾸준히 잘했다’ 스스로를 토닥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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