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12월의 기도편지

이해인 수녀·시인 2023. 12.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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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과 기도의 계절인데 공연히 몸과 마음이 바빠집니다.

저의 자그만 글방에도 요즘 부쩍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만나면 꼭 사진을 찍거나 책에 사인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니 꿈속에서도 사진을 찍고 사인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제가 살고있는 도시를 위해, 나라를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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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시인

1.12월은

12월은 우리 모두 사랑을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잠시 잊고 있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고마운 일 챙겨보고 잘못한 일 용서 청하는

가족 이웃 친지들

12월은 우리 모두 은총의 시간에 물든

겸손하고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벗으로 가족으로 다가가는

사랑의 계절입니다

- 이해인의 시 ‘12월은’

이해인 수녀가 낙엽을 들고 나무 아래 섰다. 이해인 수녀는 한 해의 끝자락에 보내온 ‘12월의 기도편지’에 배려와 용서의 시를 담았다.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과 기도의 계절인데 공연히 몸과 마음이 바빠집니다. 성탄 맞이 대청소도 해야 하고 멀리 있는 친지들에게 축하편지도 써야 하고 은인들에게 선물할 과자도 구워야 하고…. 같은 시간인데도 12월의 시간들은 어찌 이리도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자그만 글방에도 요즘 부쩍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만나면 꼭 사진을 찍거나 책에 사인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니 꿈속에서도 사진을 찍고 사인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방금 이 메일을 확인하려고 컴퓨터를 여니 디스크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의가 뜨고, 정리 좀 해보려고 작업실을 둘러보면 틈틈이 모아둔 조가비 솔방울 빈 병 빈 상자가 어찌나 많이 눈에 띄는지 평소에 정리를 제때에 못하고 사는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얼마 전 코로나를 앓고 나선 부쩍 입맛을 잃게 되어 오늘은 풋고추와 멸치를 잘게 다져 간장과 물을 넣고 팔팔 끓여 일명 ‘고추멸치간장’을 만들어 병에 담아 두었습니다.

밥에 비벼 먹으면 입맛이 돌아올 것 같아서입니다. 요즘은 규칙적으로 꾸준히 먹던 약도 먹기가 싫어져서 고민인데 곁에서 일일이 약을 먹었냐고 물어주고 챙겨주는 수녀들, 환자들의 식사를 챙기고 돌보는 힘든 소임을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후배 수녀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시 고쳐먹곤 합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들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 하루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2. 나라와 이웃 생각

잔뜩 기대하던 2030 엑스포의 꿈이 좌절되면서 부산에 산다는 이유로 친지들이 제게까지 위로의 문자를 보내오는 요즘. 제가 살고있는 도시를 위해, 나라를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패배의 부끄러움과 좌절을 딛고 다시 한번 겸손과 지혜를 모아 온 국민이 힘을 합해 조금씩 더 국력을 키워가야 되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들려온 지진의 소식, 같은 민족인데도 사이가 나빠지는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불안과 우울이 겹쳐오지만, 그래도 희망을 지니고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내가 태어나 숨을 쉬는 땅

겨레와 가족이 있는 땅

부르면 정답게 어머니로 대답하는

나의 나라,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마냥 설레고 기쁘지 않은가요

말 없는 겨울산을 보며

우리도 고요해지기로 해요

봄을 감추고 흐르는 강을 보며

기다림의 따뜻함을 배우기로 해요

좀처럼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습관처럼 나무라기만 한 죄를

산과 강이 내게 묻고 있네요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며 고백하렵니다

나라가 있어 진정 고마운 마음

하루에 한 번씩 새롭히겠다고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겠다고!

- 이해인의 시 ‘나라생각’

며칠 전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재활시설에 가서 함께 시를 읽고 담소를 나누며 모처럼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웃음은 천진했고 눈빛은 이웃의 따뜻한 이해와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지요.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임을 다시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찾았으나 뵈올 길 없고/ 영혼을 찾았으나 만날 길 없어 형제를 찾았더니 셋 다 만났네‘라는 말이 적힌 쪽지를/ 벗에게 전해 받고 생각에 잠깁니다/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사랑으로 찾아 나서면/ 길이 열리리라 믿고 희망하면서!/ 어려운 이웃 찾아 멀리 갈 수 없으면/ 매일 만나는 이들에게라도 말과 행동으로 정성껏 인내하는 작은 사랑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좋은 이웃으로 다가설 수 있을 테니까요/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이해인의 시‘ 좋은 이웃되기’

3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받은 은혜에 감사함과 동시에 잘 못 했던 부분을 안팎으로 돌아보고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 제 마음의 뜰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12월입니다. 정원에 핀 하얀 동백꽃의 미소가 아름답고, 오랜만에 잔디밭에 놀러 온 후투티 새의 깃털과 가벼운 발걸음이 더욱 정겨운 이 시간. 저는 두 손 모아 낮은 음성으로 이렇게 기도 해 봅니다.

용서해야만 평화를 얻고/ 행복이 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일이 어려워 헤매는 날들입니다/ 지난 일년 동안/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시간들/ 무감동으로 대했던 만남들/ 무자비했던 언어들/ 무절제했던 욕심들/ 하나 하나 돌아보며/ 용서를 청합니다/ 진정 용서받고 용서해야만/ 서로가 웃게 되는 삶의 길에서/ 나도 이제 당신을 용서해야겠습니다/ 따지지 않고 남겨두지 않고/ 일단 용서부터 하는 법을/ 산타에게 배우는 산타가 되겠습니다

-이해인의 시 ‘용서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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