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명품 싹쓸이 쇼핑? 돌아온 유커는 다른 걸 했다
올해 22만명, 작년보다 12배 늘어… 면세점 쇼핑보단 맛집·지방 투어
“이얼싼! 아, 타이 렁 러….(하나 둘 셋! 아, 너무 추워!)” 지난 19일 제주시 삼도 2동 제주목 관아. 조선 시대 제주 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官衙)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오전 11시쯤 흰 눈이 가득 쌓인 이곳 경내에서 20~30대 중국인 관광객들 10여 명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중국인 밍야오(26)씨는 “SNS에서 이곳이 흰 눈에 덮이면 최고의 사진 찍을 장소란 후기를 보고 찾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MZ 세대를 중심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올해 10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2만3319명으로 전년 1만8109명에 비해 1년 만에 12.3배가 늘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0월 48만명의 절반 수준까지 회복했다.
이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깃발 여행객’ 유커(游客), 면세점에서 명품 싹쓸이를 하던 중국인 관광객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10월 면세점 외국인 매출액은 1조937억원으로 이전 달보다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국인 관광객 매출만 보면 더 줄었다. 롯데면세점은 올 1월~이달 11일 중국인 관광객 매출은 2019년 대비 40%, 2022년 대비 20% 정도 줄었다. MZ 세대 중국 관광객들은 면세점·백화점 쇼핑 대신에 사진 찍기 좋은 숨은 명소나 카페 거리와 골목 맛집을 찾는다. 유커가 돌아왔지만 또한 달라진 것이다.
◇돌아온 유커, 달라진 유커
21일 한국관광공사 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은 154만4280명이었고, 이 중 40세 이하는 67.5%였다. 30세 이하도 40%가량이나 됐다. 국내에 들어오는 중국인 관광객의 절반가량이 20~30대라는 얘기다.
20~30대 중국인 관광객의 상당수는 무작정 열심히 일하기보단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탕핑(躺平)’족이기도 하다. 탕핑은 평평한 곳에 누워있는 것을 뜻하는 중국의 신조어다. 상대적으로 젊고 부유하며 교육 수준이 높은 관광객이 여기에 속한다. 인터넷과 AI 활용, 소셜미디어 검색에 능하고 자기 취향도 확실한 편이다
최근 제주도에서 중국인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가 원도심에 위치한 제주목 관아와 서귀포시 예례생태공원 같은 지역이 된 것도 20~30대 관광객이 늘면서다. 제주관광공사 글로벌마케팅팀 관계자는 “뻔하지 않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새롭게 뜨는 추세”라고 했다.
반면 쇼핑엔 상대적으로 돈을 덜 쓰는 편이다. BC카드 신금융연구소가 올해 1~9월 중국인 관광객이 국내에서 은련카드를 사용한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중국인 관광객의 면세점 매출 비율은 35.9%로 2019년 같은 기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웬만한 것은 다 살 수 있다 보니 MZ 세대가 현지 쇼핑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추세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이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중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같은 달보다 0.5% 하락해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1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2% 하락했다.
◇로컬트립 전성시대
여행지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엔 그래도 지갑을 여는 추세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다국적 기업 ‘엑스트라엑셀’ 직원 1350명은 기업 포상 관광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강강술래, 민속공연 관람, 떡방아 찧기 같은 민속 체험을 즐겼고, 다 같이 서귀포 구석구석 숨은 맛집을 찾았다. 국내 지자체의 관광공사들도 이에 지방 여행을 ‘스토리텔링’으로 엮는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제주관광공사의 돌고래 관광, 스킨스쿠버 투어, 대구의 근대 골목 투어, 파주 비무장지대 투어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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