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Agere seguiture Esse
“응~ 자기소개.” 수년 전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표현으로, 누군가 타인을 비난할 때 ‘남을 비난하고 있는 그 사람이 정작 그 비난의 내용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꼬집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큰 의식 없이 쓰던 이 표현이 필자에게는 퍽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들의 표현처럼 실로 모든 행위는 자기고백이기 때문이다. “행위는 존재에 따른다(Agere seguiture Esse).”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다. 꽃을 찾아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행위를 보고 우리는 그가 나비임을 안다. 똥을 찾고 그것을 제 몸에 묻히며 남에게까지 옮기는 행위는 그가 똥파리임을 드러낸다. 이처럼 모든 행위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를 알면 내 삶이 어찌 흘러가고 있으며, 그래서 어떤 결말을 맞을지, 심지어 죽은 뒤 어찌될지까지 알 수 있다. 사후에 대해 언급하는 김에 하나 짚고 넘어가 보면 사실 한국 천주교가 대중과의 소통에 게으르고 서툴렀던 탓에 대중들이 천주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다. 그중 ‘개신교는 믿으면 천국 간다던데 천주교는 믿고 선행도 해야 한다더라’는 식의 인식도 있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천주교에서 선행을 말하는 이유’가 빠져 있다. 그것은 신이 인간의 행위를 보고 심판하기 때문이거나 선행으로 감히 신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그럴 수도 없고 신은 감시자도 아니다. 그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행위와 존재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야고2,17)이기 때문이다. ‘꽃을 사랑하는 존재’인 나비는 결국 꽃밭에 있게 될 수밖에 없다. 꽃을 찾는 행위(선행) 좀 했다고 꽃밭(천국)에 보내지는 게 아니라 꽃을 사랑하는 나비(존재)니까 당연히 꽃을 찾고(행위) 결국 꽃밭에도 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한 것(하느님)을 추구(사랑)하는 존재(하느님 자녀)는 당연히 선행하며 살다가 죽어서도 선한 세상(천국·하느님 나라)에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의 예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더 쉽다. 흔한 일상의 죄로 뒷담화가 있다. 사실 내가 뒷담화 좀 했다고(행위만 보고) 신이 나를 지옥 보내진 않는다. 그런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단, 뒷담화를 사랑하는 사람(존재)은 행복할 수도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다. 왜냐하면 뒷담화를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계속 뒷담화를 하고 싶어(추구) 하는 사람(존재)은 ‘감사하며 겸손한 사람들’ 틈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쟤는 뭔데 저렇게 다 감사하대? 재수 없어” 하며 꼭 자기처럼 뒷담화하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곳으로 스스로 떠나기 때문이다. 꽃을 싫어하고 똥을 사랑하는 존재는 제 발로 꽃밭을 떠나 뒷간으로 가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근본적으로 내가 대체 뭘 보물처럼 여기며 추구하고 있는지, 즉 내가 자신을 누구라고 고백하며 살고 있는지 살필 일이다. 그게 결국 내 행위로도 드러날 것이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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