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버드’의 나라...직장인 25%가 아침 7시 전 출근길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만원 버스를 피한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 넷 중 한 명은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오전 7시 이전에 집을 나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근길 만원 버스와 몸 돌릴 틈도 없이 사람이 꽉 들어찬 지하철, 도심에서 거북이걸음을 반복하는 차 안이 싫어 새벽같이 직장으로 향하는 ‘얼리버드(early bird)’들이다.
21일 통계청은 SK텔레콤과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 712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7시 이전에 출근을 시작하는 ‘얼리버드’ 직장인은 전체 통근자의 24.6%였다. 오전 8시 이전으로 넓히면 50.8%에 달한다. 출퇴근하는 직장인 절반 이상이 겨울철 동이 틀 무렵부터 출근길에 오르는 것이다. 통계청에서 통근 시간과 거리를 구체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매일 출근하는 데 쏟는 시간은 평균 34.7분이었다. 수도권 통근자들은 출근하는 데 평균 40.3분이 걸렸다. 퇴근하는 데 걸린 시간(42.9분)까지 합치면 하루에 1시간 23분가량을 오롯이 출퇴근하는 데 들이는 셈이다. 출퇴근하느라 하루 평균 이동한 거리만 18.4㎞다. 매일 오전 6시 50분에 서울 신림동 자취방에서 출발해 양재동 직장으로 출근하는 문모(31)씨는 “7시만 넘으면 지하철이 붐빈다”며 “일하는 것보다도 ‘출근’이라는 행위 자체가 더 힘든 아이러니한 현실”이라고 했다.
출퇴근 직장인의 하루 평균 통근 거리는 왕복 18.4㎞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직장인들이 매일 경기 고양시 백석역에서 서울 광화문역까지의 직선거리만큼을 이동하는 셈이다. 특히 집이 수도권인 직장인의 통근 거리는 20.4㎞로 전국에서 가장 길었다. 이는 일산 라페스타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
◇“일찍 일어난 새도 고통스럽다”
직장인 김모(34)씨는 최근 직장을 옮기며 ‘직주 근접’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김씨는 지난 3년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서울 마포구에서 강남구 삼성역 인근 회사로 출퇴근하는 고역을 치렀다. 붐비는 지하철을 피해 새벽같이 나서 오전 6시 30분에 지하철을 탔고, 퇴근할 때는 인파를 피하려고 2호선을 거꾸로 타고 한 바퀴 돌아 집에 왔다. 매일 왕복 50㎞를 주파하며 출퇴근에만 총 2시간 30분을 쏟아부었다. 마포구 인근 회사로 이직한 그는 집에서 회사까지 2.8㎞ 되는 거리를 약 20분간 버스를 타고 오간다. 김씨는 “회사랑 가까운 게 최고”라며 “출퇴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과거와 달리 삶에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021년 12월 ‘제2차 국가 기간 교통망 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출근이나 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30분 후반대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 통근자는 여전히 출근에 40.3분, 퇴근에 42.9분이 걸린다. 오전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통근자들은 8시에는 출근 준비를 마쳐야 하고, 길이 막히거나 인파가 붐비는 게 싫다면 출근길에 오르는 시간을 앞당기는 수밖에 없다. 원치 않게 ‘얼리버드’가 되는 것이다.
지역을 넘나드는 통근자가 많은 탓도 있다. 같은 지역으로 통근하는 비율이 낮은 지역은 세종(56.8%)이 1위였다. 세종 거주자 중 20.9%는 대전, 10.3%는 충남으로 출퇴근했다. 세종에 신축 아파트 등이 들어서자 대전과 충남 등 인근 지역에 직장을 둔 이들이 세종으로 대거 이주한 영향으로 보인다.
이 밖에 인천(68.7%), 경기(74.7%), 서울(81.4%) 등이 같은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비율이 낮은 편이었다. 경기권에 집을 둔 통근자 다섯 중 한 명(21.5%)은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8)씨는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직선거리로만 35km 떨어진 서울 광화문 인근 직장으로 출근한다. 그는 “아침에 10분 여유를 부렸다간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이 20~30분은 늦어진다”고 했다.
◇장거리 통근 “건강에 해롭다”
출근길 피로감은 상상 이상이다. 인하대병원 이동욱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 출퇴근 시간으로 60분 이상을 소요하는 사람은 통근 시간이 30분 미만인 사람보다 우울증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1.1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출퇴근은 그 자체로 심리적·육체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적 여유를 빼앗아 감으로써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19년 김포골드라인에 이어 지난해 신림선, 올해 서해선 등 새로운 교통망이 계속 깔리고 있지만, 출근길 대란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정원을 290% 초과하는 높은 혼잡도로 악명을 자랑하는 김포골드라인은 ‘김포골병라인’으로 불린다. 김포골드라인을 타고 다니면 몸이 축난다는 뜻이다. 최근에도 승객들이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도심 교통망을 획기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지금 국내에서는 GTX 등 철도 부설에 집중하고 있는데, 철도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하고 관리도 까다롭다”며 “광역 버스를 대폭 늘려 자차로 이동하는 인구를 줄일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출근길 버스 전용 차로를 확대하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용 중심지 주변에 통근자들이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과밀 개발을 걱정해 외곽으로만 자꾸 뻗어나갈 게 아니라, 서울이라고 해도 고용이 밀집한 지역 주변으로는 주거 공급을 확대하는 등 접근성을 높여나가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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