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는 노후 주택,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추진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도심 노후 주거지 정비와 관련해 “서울 주택의 절반 이상이 20년 이상 노후화됐고, 특히 저층 주거지의 경우 35년 이상 된 주택이 절반에 가깝다”며 재개발·재건축 착수 기준을 ‘위험성’에서 ‘노후성’으로 바꾸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래된 아파트나 빌라, 저층 주택은 당장 안전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너무 낡아 거주 환경이 나쁘면 재개발·재건축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조만간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안전 진단을 거치지 않고 재건축 절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랑구의 소규모 주택 정비 구역인 모아타운 현장에서 주민 간담회를 열고 “사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 절차를 아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개선도 하겠다”고 했다. 모아타운은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의 노후 저층 주거지를 하나로 묶어 정비하는 사업이다. 윤 대통령은 “현재는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려면 먼저 기존 주택에 대한 안전 진단부터 받고 위험성을 인정받아야 시작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다 보니까 자신들이 사는 집이 위험해지기를 바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 착수 기준 변경을 위해 도시주거환경정비법과 관련 시행령 개정이 추진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방안을 꺼내 든 것은 지난 정부에서 관련 기준을 까다롭게 해 재개발·재건축이 위축되고, 이 때문에 슬럼화되는 지역이 늘고 신규 주택 공급도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날 둘러본 서울 중랑구 중화2동 지역은 약 20년 전 뉴타운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으나, 재개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개발·재건축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서울 주택 노후화와 공급 부족 우려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서울의 준공 후 30년 이상 된 노후 주거용 건물은 23만3825동으로 전체의 절반(54.3%)을 넘는다. 주택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도 크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921가구로, 통계를 집계한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서울은 주택을 지을 땅이 부족해 재건축·재개발이 신규 주택 공급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한다.
현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꾸준히 완화해 왔다. 올해 초 안전 진단 요건을 대폭 완화해 아파트 재건축 문턱을 낮췄다. 최근에는 재건축 부담금을 줄여주는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지난 5년간 총 65건으로 연평균 13건에 그친 재건축 안전 진단 통과 건수는 올 한 해에만 163건으로 늘었다. 이날 윤 대통령과 동행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도심 주택 공급을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이 활용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불필요한 절차를 개선하고 각종 인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모아타운 같은 소규모 도시 정비 사업 지원을 강화해 재개발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모아타운은 소규모의 낡은 저층 주거지를 묶어 대단지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모아타운은 2021년 공모를 시작해 현재까지 81곳이 선정됐다. 윤 대통령은 “소규모 도시 정비 사업에 대한 재정 지원과 이주비 융자를 확대해 국민들의 거주 환경을 속도감 있게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모아타운 및 재개발·재건축 후보지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정부가 이 같은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부동산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여파로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안전 진단 규제 완화 외에 용적률 상향 등 재개발·재건축의 사업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고, 과거 뉴타운 같은 대규모 재개발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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