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한동훈에 보수 미래 맡겼다
與는 70년대생 검사 사령탑, 野는 60년대생 운동권으로 대결
한동훈(50) 전 법무부 장관이 21일 내년 총선까지 국민의힘 사령탑을 맡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명됐다. 집권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사 출신 한 전 장관에게 자신의 명운을 맡긴 것이다.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한 장관은 가장 젊고 참신한 비대위원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전 장관은 이날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한 전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원장 수락 이유에 대해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며 “용기와 헌신으로 해내겠다. 국민의힘을 이기는 정당으로 이끌어가겠다”고 했다.
국회가 이날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마무리하고, 국민의힘이 한 전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한국 정치는 본격적인 총선 국면으로 진입하게 됐다. 특히 내년 총선은 1973년생 엘리트 검사 출신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과, 1964년생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86세대 운동권 출신들이 주력을 이루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대결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이 구도에는 세대와 세력이라는 두 가지 충돌 요소가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한국 정치의 주도 세력 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은 이번 비대위원장 지명 기준에 대해 “변화와 쇄신, 미래를 갈망하는 국민 기대에 부합하고 정치 문화 개혁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청년층과 중도층의 공감대를 이끌고 보수 지지층도 재결집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권은 국민의힘의 차기 대선 주자 1위인 한 전 장관이 당의 새로운 간판으로 조기 등판하면서 총선 승리를 견인하는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2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이임식을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은 것과 관련, “비상한 현실 앞에서 ‘잘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자신감보다 동료 시민과 나라를 위해서 ‘잘해야만 되겠다’는 책임감을 더 크게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식 있는 동료 시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길을 같이 만들겠다. 국민의 상식과 국민의 생각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앞장서겠다”고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치를 하더라도 결국 법과 원칙을 토대로 상식적인 판단을 기본으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전 장관은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쟁투의 의미에서의 정치에서는 멀리 있었지만 공공선의 추구라는 큰 의미에서의 정치는 (검사 생활을 하며) 20년째 하고 있다”며 “그 마음 그대로 현실 정치에 들어가려 하는 것이고 그런 것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삶과 미래를 더 낫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를 좀 더 좋게 만들고 싶고, 국민을 좀 더 잘살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정치인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전 장관은 또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최대한 많이 나올수록 더 강해지고 유능해지고 국민에게 더 봉사할 수 있는 정당”이라며 “다양한 목소리를 잘 듣고 거기에 따라서 같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서 이겨야 할 때 이기는 정당으로 이끌어가겠다”고 했다. 그간 국민의힘이 당내 쓴소리를 ‘내부 총질’로 몰며 당내 민주주의가 부족하다는 여권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당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많은 분들을 만나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한 전 장관은 수직적 당정 관계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정부든 모두 헌법과 법률 내에서 국민을 위해서 일하고 협력해야 할 기관”이라며 동등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소수당이지만 대선 승리로 행정을 담당하는 이점이 있어 국민의힘의 정책은 곧 실천이지만 다수당 민주당 정책은 약속일 뿐”이라며 “그 차이를 활용해서 국민들께 필요한 정책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초대 법무부 장관을 맡기 전까지 21년간 검사 생활만 했던 한 전 장관은 ‘검사-법무부 장관-여당 비대위원장’이라는 초유의 경로를 통해 사실상의 집권 여당 대표로 정치 경력을 시작하게 됐다. 70년대생 ‘X세대’에 속하는 한 전 장관은 서울 강남에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 재학 중인 22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검찰 내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정치권 이력이 없는 한 전 장관이 여당을 이끌게 되면서 한국 정치에 새바람이 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한 전 장관은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제도권 안에서 성장해 온 사람”이라며 “민주당 운동권이 ‘투쟁’ ‘타도’ 같은 단어를 썼다면, 한 전 장관은 여의도 문법 대신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X세대인 한 전 장관은 민주당의 86 운동권은 물론 대체로 ‘묻지 마 진보’인 70년대생들과도 다르다”며 “오히려 ‘탈정치’ ‘탈이념’의 2030세대와 가까운 스타일과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젊은 층에 호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73년생 한동훈은 86세대의 저승사자가 돼 여의도의 전면적 세대교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어도 헌법상 권한을 토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지만 정당 정치 구조는 그런 단순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정치를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야당과 말씨름으로 부각된 한 전 장관이 스스로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여당 의원은 “국민들 눈에 상명하복처럼 보이는 당정 관계를 바꾸지 않으면 민심을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한동훈 등판의 의미는 총선의 물꼬를 86세대 심판론으로 돌리기 위해 새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인데 ‘윤핵관’이나 김기현 체제 인사들과 엮이는 순간 그길로 끝”이라며 “이념에 경도된 ‘올드 라이트(Old Right·낡은 우파)’가 아닌 ‘넥스트 라이트(Next Right)’처럼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해야 세대교체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 전 장관은 비대위 구성에 대해 “국민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분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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