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특검 정면 돌파해야 윤석열도 살고 한동훈도 산다
여당 혁신, 총선 승리 이끌려면
‘총선 후 실시 특검안’ 尹 설득하고
尹도 “나를 밟고 가라” 결단해야
총선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이므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 요인의 볼륨을 최대한 낮추는 쪽으로 몰고 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요인은 첫째는 리더십 스타일, 둘째는 검찰 편중 인사, 셋째는 배우자 문제인데 한동훈 체제는 여기에 확성기 효과를 낼 수 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모두 검사 출신이라는 점은 총선을 검찰정권 심판으로 몰아가려는 좌파들에겐 좋은 먹잇감이다.
한동훈은 비리 좌파 집단에 맞서는 이미지로서 주가가 상승해 왔다. 맞은편에 ‘중대 범죄혐의자 이재명’이라는 어둠이 있어 더 빛이 날 수 있었는데 만약 총선 직전 이 대표가 2선으로 물러나고 경제 민생 안보, 그리고 김 여사 문제가 주된 이슈가 되어 버리면 한동훈의 강점도 빛이 바랠 수 있다.
그런 리스크를 알면서도 상당수 보수층이 모험을 해도 좋다고 기대할 만큼 한동훈은 똑부러지고 스마트한 새로운 스타일의 보수지도자로 성장할 잠재력을 보여 왔다.
보수 지지자들은 무엇보다도 여당의 판을 흔들어줄 누군가를 고대했다. 2021년 봄 국민의힘이 확 바뀌어야만 정권교체의 희망이 생긴다는 염원에서 이준석을 선택한 ‘집단적 열망’과 마찬가지로 지금 보수층은 여당이 혁명적으로 바뀌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힘 비대위원장 앞에 놓인 과제들, 즉 △김건희 특검 △대통령과 당의 수평적 리더십 회복 △공천권 독립 등은 대통령의 호응 없이는 풀기 어려운 것들이다. 특히 특검은 앞으로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총선 후 특검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큰 한 장관의 19일 특검 관련 발언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우선 내용면에서 의미가 있다. 민주당 특검법안의 터무니없는 악법 조항들을 수정하고, 선거에 악용되지 않도록 수사 개시 시점을 총선 직후로 하자는 게 ‘총선 후 특검론’의 골자다. 양극단이 맞붙는 사안들에 공정하고 현명한 중재안을 제시해 주는 현인그룹·원로그룹이 만약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면 그들도 아마 비슷한 안을 내놓을 것이다.
야당이 이를 거부한다면 특검법의 의도가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게 아니라 오로지 비열한 정략적 목적이었음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대통령 측도 “문재인 검찰이 탈탈 털었어도 나온 게 없는 사안”이라고만 주장할 게 아니라 국민이 그 무고(無辜)함을 믿게 만드는 절차적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한 장관 발언에 상당히 불쾌해하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미 다 문제없는걸로 판명난 일인데 왜 특검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여지를 두느냐는 것이다.
이제 한 장관이 매우 중요한 시험대에 서게 됐다. 대통령의 거부 의사가 완강하다 해서 발언을 주워 담는 식으로 후퇴할 경우, 그의 정치적 미래는 시작부터 휘청이게 된다. 좌파의 ‘아바타론’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혹시나’ 했던 중도층도 ‘역시나’ 할 것이다.
대통령이 끝끝내 배우자를 감싸고, 공천에 대통령이나 배우자의 입김이 미친다는 잡음이 나올 경우 국힘은 거대한 족쇄를 찬 채 전장에 나설 수밖에 없다. 선거 결과는 더 참혹해지고 정치인 한동훈의 미래도 함께 마감될 수 있다.
윤 대통령도 살고 한동훈 비대위도 살 수 있는 길은 특검 정면 돌파다. 물론 대통령은 고개를 흔들 것이다. 그런 대통령을 설득해 ‘총선 후 특검론’을 관철하는 게 정치 능력이고 정치 기술이다. 특별감찰관 임명도 설득시켜야 한다.
대통령이나 김 여사가 불쾌해하거나 압력이 들어와도 밀고 가는 뚝심을 보여야 한다. 이 문제를 못 풀면 정치를 그만둘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럴 자신과 의지가 없다면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좋다. 대통령실이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이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에 세웠다고 보려 한다. 그 손의 이미지를 끊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좌파의 아바타 공세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 김 여사 문제를 못 푼 채로는 윤 정권은 임기 내내 목줄 끌려다니듯 시달리게 된다. 꼼수로는 극복할 수 없다.
특검 결과 무고함이 만천하에 입증되면 날개를 달게 된다. 설령 야당이 뭔가를 꼬투리 잡아 구속시키려 한다고 가정하자. “너무 하는거 아냐”라는 동정여론이 불길처럼 번질 것이다. 정치는 동정받는 쪽이 항상 이긴다.
한 장관은 당초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노동 분야 쪽 일이나 비례대표를 내심 희망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법조계 출신 원로가 찾아가 설득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한동훈이라는 보수의 재목을 설득해 이렇게 일찍 차출했을 때는 그 인기만 빌려 쓰겠다는 발상이어선 안 된다. 성공 스토리를 연출해 주는 게 의무다. 그럴 의향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한동훈 카드를 접는 게 옳다. 귀한 재목을 불쏘시개처럼 쓰고 버려선 안 된다.
한동훈은 모든 능력을 동원해 대통령을 설득하고 윤 대통령은 “나를 밟고 가라”는 심정으로 결단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바뀌고 당정관계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와야 정권도 살고 한동훈도 산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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