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청동 거울에서 발견한 K반도체의 힘[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2023. 12. 2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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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피라미드, 구석기시대의 제사 유적 괴베클리 테페 등 세계 곳곳에는 지금도 쉽게 밝히기 어려운 고대의 기술이 있다. 한국은 거대한 건축이나 문명은 없지만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 바로 세심하게 무늬를 넣은, 2400년 전 남한에서 족장(또는 샤먼)이 사용한 잔줄무늬의 구리거울(정문경 또는 다뉴세문경)이다. 마치 반도체의 웨이퍼를 연상시키는 외형처럼 정문경에는 지금도 완벽히 풀리지 않은 고대 문명의 첨단 테크놀로지가 들어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고대 유물인 정문경의 비밀을 한번 생각해 보자.》




미세 무늬 가득한 청동거울

충북 청주 오송에서 발굴된 청동거울(위 사진). 한반도에는 원재료인 주석 광산의 부재로 거대한 청동기는 제작되지 않았지만 정밀한 무늬를 새겨넣은 청동거울 등이 발굴된다. 오른쪽 사진은 거울 일부를 확대한 모습. 강인욱 교수 제공
흔히 세계 문명은 ‘청동기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청동기라는 기술의 도입은 고대 사회를 바꾸는 핵심적인 기술이었다는 뜻이다. 한반도의 청동기는 바로 인접한 중국 중원지역과는 완전히 다르게 발달했다. 중국의 청동기는 약 400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화려한 이무기 문양(도철문·饕餮文)을 새긴 거대한 제사용 그릇이 특징이다. 반면에 한국은 족장(또는 샤먼)들이 사용하는 무기인 동검과 제사를 위한 거울과 방울을 주로 청동기로 만들었다. 또한, 그 표면에는 지그재그의 추상적인 기하학적 무늬를 넣었다. 한국의 청동기는 중국과는 별도로 유라시아 초원 지역에서 유래해서 고조선을 거쳐서 온 것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한국 청동기는 단순히 유라시아 것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로 승화시켰으니 바로 정문경이 대표적이다. 기하학적 무늬를 넣은 거울은 약 4000년 전 유라시아 초원과 중국 북방 지역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약 2800년 전에 고조선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번개무늬의 거울로 발전했다. 바로 이 번개무늬의 거울이 다시 한반도로 오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정밀한 무늬를 넣은 정문경으로 이어졌다. 국보로 지정된 숭실대 소장 정문경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의 크기이지만 그 표면에는 0.2mm의 미세한 선이 무려 1만3000개나 들어있다.

이 미세한 무늬를 청동기에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먼저 나무나 돌로 만든 제도기로 거푸집에 그 무늬를 새겨야 한다. 그리고 거푸집에 새긴 무늬들 틈으로 빠짐없이 청동 주물을 넣고 굳혀서 만든다. 게다가 거울을 만드는 청동기는 다른 것보다 주석의 함량이 많다. 표면이 아름다운 대신에 잘 깨지는 단점이 있다. 진정한 장인 정신으로 만든 명품이 바로 정문경인 셈이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그 기술의 비밀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중이니 가히 한국을 대표하는 고대의 테크놀로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피라미드와 같이 거대한 건축은 없지만 대신에 장인들의 놀라운 집중과 집적도로 만들어 낸 정밀 기술이 발달했다.

고대 첨단 기술은 ‘신의 것’

정문경은 얼굴을 비추며 몸을 단장하는 일반적인 거울과 다르다. 바로 샤먼의 가슴팍에 걸고 의식을 행할 때 태양을 반사하는 용도이다. 거울의 위쪽에 2개의 꼭지가 붙은 이유는 바로 샤먼의 옷에 부착하기 위한 용도이다. 이 청동거울의 사용법은 지금도 활동하는 시베리아의 샤먼들 사이에 잘 남아있다. 지금 시베리아 샤먼들도 2400년 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몸에 청동방울을 달고 움직이며 의식을 하는데 영롱한 방울 소리와 함께 찬란한 태양 반사광이 사방을 비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이 들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문경의 잔무늬는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거울의 뒷면에 붙어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곳 가장 비밀스러운 면에 최첨단의 기술을 숨겼다는 뜻이다. 샤먼의 거울은 바로 샤먼의 신통력과 힘을 상징하는 것이니 고대 샤먼들은 첨단의 기술 자체를 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숭배했다는 증거이다. 흔히 한국 전통사회는 쌀농사에 기반하고 기술을 경시했던 사회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조선시대 이후의 일이니,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그것을 계승한 남한의 삼한 사회는 누구보다도 기술을 존중한 사회였다.

日에도 전해진 韓 청동 기술

기하학적 무늬를 새겨 넣은 청동기는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정문경은 특별하다.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더 정교한 새김이 들어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기에는 우리만의 비법이 숨어있었으니, 바로 거푸집의 개혁이 있었다. 흔히 사용하는 돌로 만든 거푸집에 무늬를 새겨서 청동기를 만드는 방식으로는 정밀한 무늬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한반도의 청동 기술자들은 돌 대신에 흙이나 모래를 굽고 그 위에 컴퍼스를 이용하는 정교한 제도법을 개발했다.

청동기의 제작 자체는 뜨거운 불을 이용한 금속 제련술이 필요하다. 반면에 그 위에 무늬를 넣는 것은 차가운 돌 위에 새기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거울은 이렇게 외부에서 들어온 청동기 기술에 한국에서 발달한 정밀한 거푸집 제작 기술이 결합된 것이다.

2300년 전 베트남 북부에서 사용된 대형의 청동북. 강인욱 교수 제공
이렇듯 한국의 청동기는 주변의 나라들과 많이 다르다. 세계 여러 문명과 우리 주변의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거대한 청동기를 만드는 것을 선호했다. 유라시아 초원에서는 청동기로 전차와 기마 도구를 만들었다. 중국은 거대한 제사 그릇을 만들어 제후국을 다스리는 도구로 썼다. 우리가 작은 정문경을 만들던 시기에 베트남 일대에서는 크기로 사람을 압도하는 청동북을 만들었고, 일본에서는 거대한 청동종을 사용했다. 청동북이나 종으로 울리는 거대한 소리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왜 한국은 그러한 거대하고 웅장한 청동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단순히 청동을 몰라서가 아니다. 청동기의 원재료인 주석이 없어 청동기의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에도 석검을 많이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에 베트남 일대는 청동기가 풍부해서 농기구까지도 청동으로 만들 정도였다.

이러한 지리와 자원 분포의 불리함은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술을 구현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대형 청동기 대신에 석기 제작으로 갈고닦은 제조 기술을 결합해 무늬를 넣은 특별한 청동거울을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진일보한 청동기 제작 기술은 이후 일본으로도 건너갔으니, 일왕의 3종 신기 중 하나인 청동거울로 이어졌다.

청동 기술과 K반도체의 공통점

정문경은 유라시아에서 시작된 신기술에 한국이 자체적으로 발달시킨 섬세한 기술이 결합된 결과이다. 21세기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의 발전은 많은 점에서 2400년 전 청동거울의 발명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반도체를 찍어내는 실리콘으로 만든 동그란 웨이퍼는 마치 청동거울을 찍어내는 거푸집을 연상케 한다. 형태와 크기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집약적인 기술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달리하는 두 기술이 한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반도체 웨이퍼는 과거 청동거울을 찍어내는 거푸집을 연상케 한다. 고조선 청동거울과 K반도체는 그 정밀함에 공통점이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인텔의 최고경영자(CEO) 팻 겔싱어는 지난 50년간 석유가 매장된 곳이 지정학적인 패권을 차지했다면 앞으로는 고밀도의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는 다른 기술과는 다르다. 단순한 기술의 도입이 전부가 아니라 순도 높은 칩을 양산하는 고밀도 집적 기술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매우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최근 21세기 반도체 칩을 둘러싼 세계 대전이 격화되고 있다. 단순한 기술력의 경쟁을 넘어서 정치 경제 외교 등 국가 전체의 역량을 걸고 싸우는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한다. 특히 거대한 자본과 인력으로 무장한 중국이 새롭게 부상하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록 거대한 청동기 문명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작지만 하이 테크놀로지로 유일무이한 청동 기술을 만들었던 선조들의 지혜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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