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님,우린 꼭 다시 만날 거예요[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과거·현재·미래를 담아내는 ‘별’…별은 우리와 어떻게 이어져 있기에 희망·위안이 될까
137억년 전 우주 탄생의 순간 생겨난 별가루…별과 완전히 똑같은 별가루로 만들어진 우리
하나의 시공간 연속체라는 ‘무대’서 살아가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서로 영향 주는 일 멈추지 않아
언젠가 시공간을 타고 날아가 또 다른 생명체, 더 멀리 날아가 새 별이 되기도 하는 우린…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
나와 나의 글
나는 물리학자이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스스로를 문화와 예술을 연구하는 ‘문화물리학자’라고 부른다.
나의 이름이나 이 연재가 생소한 독자라면 함께 쓸 일이 좀처럼 없을 것 같은 ‘문화’의 연구를 과연 물리학의 한 분야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나만큼 이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야말로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로 한순간도 빠짐 없이 그와 똑같은 고민을 해온 처지이니 말이다.
‘문화물리학’이라는 개념은 문화와 물리학 사이에 분명한 연결고리를 반드시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부터 만들어졌다. 두 낱말의 뜻만 보더라도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필연으로 보였다. 물리학(物理學)이란 모든 ‘물(物)체들의 이(理)치를 알아내는 것’이므로 문화도 그 대상이 될 것이고, 문화란 ‘인류의 삶의 방식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것들의 총체’인데 물리학도 응당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소 순진해보이긴 하지만 나 스스로는 말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믿음의 발사대로부터 출발한 이후 문화와 물리학 사이의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찾아갔던 여정의 기록을 ‘박주용의 퓨처라마’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독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여행하는 즐거움의 절반 이상은 계획에 없던 곳에 발을 들이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되는 ‘기분 좋은 놀라움’(serendipity·세렌디피티)에서 온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나도 연재를 시작할 때는 매일같이 학교에서 강의하던 내용인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한 컴퓨터 그래픽스나 디지털 음악과 같은 기술에 담긴 과학적 원리’만 글로 풀어써서 올리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와 물리학의 연결고리는 그러한 피상적인 과학적 원리보다 한 단계 더 깊은 곳에서 그 원리들을 찾아내고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문화와 물리학, 더 나아가 위대한 인류 문명이라는 것은 때때로 단 한 사람의 꿈과 희망으로부터도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주용의 퓨처라마’는 인류에게 태양 표면보다 뜨거운 불을 건네준 로버트 오펜하이머(44회 ‘우주의 비밀을 해독한 물리학의 인사이더’), 음악이 사라진 자리를 자연의 소리로 가득 채워넣어 음악을 새롭게 정의해낸 존 케이지(23회 ‘질서와 무질서를 오가며 만물은 변화·적응하겠지’)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선지자들, 우리가 기계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고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지 고뇌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SF <배틀스타 갤럭티카>(1회 ‘인간과 모든 것이 똑같은 로봇이라면…인간일까 로봇일까’)와 <듄>(20회 ‘창작의 의지를 꺾는 자, AI의 지배를 받을지니’) 같은 우주적 서사, 우리가 올바로 소통하고 있는지의 문제(21회 ‘지금 던진 그 말도 미래의 언어의 씨앗이 된다’, 43회 ‘불통 언어의 산더미 SNS…비트겐슈타인이 봤다면’),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10회 ‘이론 속에만 사는 과학자들이여, 자연을 몸으로 겪어보라’, 33회 ‘이성보다 꿈을, 현실보다 상상을’) 같은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이번 글로 그 여정은 마무리된다.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한번 제일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 이 세 가지-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번에 담아내고 있는 말이 있다.
“별.”
우리는 지금과 다름을 꿈꾼다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일생은 자신이 살아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일상 도덕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 기록처럼 읽히기도 한다. 더블린의 트리니티와 영국 옥스퍼드의 머들린 칼리지에서 그레이츠(Greats)라고 부르는 고전학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졸업한 뒤에는 작가가 되어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그는 ‘경구(警句·epigram)’라고 하는 재기 넘치는 짧은 글로도 유명해졌다. 나는 그 가운데서도 그의 희극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년 런던 초연)에 나온 다음의 경구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낀 경외감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우리는 모두 도랑에 빠져있지만, 우리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이 문장을 보자마자 나의 마음속에는 어두운 숲속을 가다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져 들어간 흙탕에서 빠져나오려 끙끙거리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에 촘촘히 맺혀있는 별들이 그려졌다. 이 순간부터 별은 나에게 ‘벅찬 미래’를 의미하게 되었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아주 오래전의 이 기억이 떠올라 내 서재의 책장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어린 학생일 때부터 간직해왔던 책들이 몇 권 꽂혀있는데, 그 가운데 <Le Petit Prince> <Regulus> <星の王子さま>라는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는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의 1943년작 <어린 왕자>의 원어본과 번역본들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싶어했던 언어들(프랑스어, 라틴어, 일본어)로 되어있는. 이 이야기에서 어린 왕자는 여러 별(행성)들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기묘한 인물, 동물, 사물들과 대화하며 행복, 외로움, 그리고 서로 돌봐준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다. 결국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슬픈 별인 지구라는 곳을 아끼게 되는 한 소년의 환상적인 이야기의 서문에서 생텍스(생텍쥐페리의 애칭)는 응원해주고 싶은 한 어른 친구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어른도 한때 어린아이였던 적이 있다는 말을 한다.
우리는 모두 별이다
이 책들을 갖게 되던 시절의 설렘이 다시 느껴지는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펼쳐 천천히, 불완전한 언어 실력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을 찾아서 띄엄띄엄 읽어보았다. 그러자 우주와 별이란 우리와 어떻게 이어져 있기에 밤하늘의 별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뜻하게 되었고, 별을 여행하는 어린 왕자가 된 상상을 하면 마음에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주에는 약 2조(100만의 100만의 두 배)개의 별(스스로 빛과 열을 내는 종류)이 자리 잡고 있고, 우리가 사는 지구의 맑은 밤하늘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약 8000개라고 한다. 별의 중심에서는 수소가 융합하여 헬륨이 되는 반응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빛과 에너지가 외부로 발산되는데, 우주에 퍼져있는 그 수많은 별들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137억년 전 우주 탄생의 순간에 함께 생겨난 별가루(stardust·스타더스트)들이다. 그 외의 다른 별들(행성과 같은 천체)도 그렇다.
그런데 별들과 완전히 똑같은 별가루로 만들어져있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 바로 우리들이다. 이렇게 꽤나 낭만적인 이름의 ‘별가루’라는 것은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흔하디 흔한 원자 알갱이에 지나지 않는 자그마한 것들이지만, 엄청난 수의 별가루가 뭉쳐 밤하늘을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별이 되기도 하고, 그 별들을 바라보며 꿈을 꾸는 우리가 되기도 한 것이다. 별을 바라보며 꾸는 꿈은 그렇게 별가루 동족을 그리워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별가루는 다시 만난다 - 시공간이란
근대과학이 등장하기 이전 시대에 ‘하늘의 별과 인간은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였다면, 확인할 수 없는 꿈같은 소리를 한다면서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로 놀림을 당했을 것이다. 세상 만물은 원자라는 공통의 것으로 만들어져있다는 것을 처음 상상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70년경)의 삶도 그렇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그가 가졌던 꿈은 결코 잊히지 않은 채 200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남은 뒤 그가 살던 곳에서 바다 건너 있는 브리타니아 섬에서 근대과학의 힘으로 원자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자연의 본질에 대한 영원한 진리의 반열에 끝내 오르게 되었다.
이 글 처음에 위대한 문명의 씨앗은 단 한 사람의 꿈과 희망일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씨앗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처럼 수천년의 시간을 살아남아 아주 머나먼 곳에서도 꽃피울 수 있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들도 언젠가 이렇게 만나게 되어있는 것 같다.
‘시간’과 ‘공간’. 공간이란 어떠한 물체가 크기를 갖고 존재할 수 있게 해주고, 시간이란 그 물체가 변화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것이 아닌 ‘시공간 연속체’(space-time continuum)를 이루고 있다고 이해한다. 우리 모두는 이 하나의 시공간 연속체라는 무대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똑같은 별가루로 만들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시공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므로 어느 한순간도 서로 영향을 주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별가루들은 언젠가 시공간을 타고 어딘가로 날아가 또 다른 생명체가 되기도 하고, 더 멀리 날아가 새로운 별이 되기도 하므로 우리는 서로에게서 결코 영원히 떨어져있을 수 없다.
다시 만날 때까지
문화와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래된 기억들을 되살려보기도 하고, 내가 아는 것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뒤에는 연구실에서, 미술관에서, 공연장에서, 또 자연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아보며 여러 해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한 나의 이야기들을 읽어주시는 분들을 만나 그분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직접 듣고 대화할 기회가 터무니없이 적었다는 것이 단 하나의 아쉬움이지만, 내가 처음에 꾸었던 연결의 꿈이 조금이라도 실현되었다는 보람에서 오는 행복의 일부만큼이라도 독자분들에게 전달되었거나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재미를 드렸다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 같다.
같은 별가루로 만들어진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어있으니까. <연재 끝>
박주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박주용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