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vs 고어’ 판결 이후…다시 미 대선 운명 쥔 연방대법원
연방대법관 9명 중 보수가 6명…트럼프에 유리 분석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에게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는 미국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이번 사건을 최종 판단할 연방대법원이 2024년 미국 대선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가 아닌 조지 W 부시의 손을 들어준 연방대법원이 다시 미 대선의 중심에 서게 됐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미 주요 매체들은 연방대법원이 내년 대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선거의 윤곽을 바꿀 수 있다고 보도했다. 콜로라도주 판결이 다른 주의 비슷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트럼프 측은 이 사건을 연방대법원까지 끌고 갈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앞서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전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1·6 의회의사당 폭동’을 독려한 행위가 내란에 해당한다면서, 수정헌법 14조3항을 근거로 그의 공화당 예비선거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연방대법원은 1·6 의회의사당 폭동이 내란인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담했는지, 당시 대통령이었던 그가 면책특권을 받을 수 있는지, 수정헌법 14조3항이 규정한 공직에 ‘대통령직’도 적용될 수 있는지 등 여러 어려운 문제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2000년 ‘부시 대 고어’ 판결 이후 연방대법원이 다시 한번 미 정치 한복판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당시 대선에서 민주당의 고어 후보 측은 전체 득표율에서 앞섰지만 플로리다주에서 단 537표 차로 뒤져 패배하자 법원에 재검표를 요구했는데, 연방대법원이 재검표 중단 판결을 내리면서 결국 한 달여 만에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데이비드 베커 선거혁신연구센터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연방대법원은 부시 대 고어 사건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3명을 포함해 보수 성향 대법관이 전체 9명 중 6명이다. 그간 임신중지권, 소수인종 대입 우대 정책, 성소수자 이슈 등 주요 사건에서 보수적인 판결을 내려왔기 때문에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도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히거나 보류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연방대법원이 그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시도까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 몇년간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제기한 소송 대부분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이미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미 사회가 이번 사건으로 더 분열될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유권자가 아닌 법관들이 정치적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를 놓고도 찬반이 양립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판결 ‘시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럼프 측은 이미 기소된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판결이 나오기 전 대선을 치르기 위해 최대한 소송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자신의 사건을 스스로 취하하는 ‘셀프 사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미 헌법은 대통령의 사면권에 거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후임자나 의회가 되돌릴 수도 없다. 다만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도 자신을 ‘셀프 사면’한 전례가 없기에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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