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기습 이후 “군 못 믿어”…자체 무장하는 이스라엘인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20일(현지시간) 사망자가 2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집과 병원 등 삶의 터전은 모두 무너져내렸다. 동시에 이스라엘 사회 또한 돌이키기 힘든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미국 시사잡지 뉴요커는 전쟁이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방식을 일순간에 바꿔놓았다고 진단했다.
우선 정부와 군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탓에 자체 무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일 이스라엘 정부 자료를 인용해 지난 10월7일부터 12월 초까지 당국에 총기 보유 면허를 신청한 사람이 26만500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는 1월1일부터 10월6일까지 3만6000명에 그친 것과 비교해 많이 증가한 수치다. WSJ는 “평소 무기 소유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많은 이스라엘인이 이젠 자진해서 총기를 찾고 있다”며 “하마스 기습으로 남부에서 1200명이 사망한 이후 이스라엘 전역에선 자위대 구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엄격한 총기 관리로 유명하다. 민간인이 총을 보유하려면 보안을 위해 무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당국에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대부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에게만 허가증을 내준다. 여기에 팔레스타인과의 융화를 추구하는 세속주의 성향의 시민들은 총기 보유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은 이들의 사고방식을 일순간에 바꿔놨다. 중부 해안 도시 빈야미나에 사는 리란 카미네르(50)는 WSJ에 “나는 히피로 살아왔다. 평화를 원한다. 그래서 총기 소유에 반대해왔다”며 “하지만 이번 일로 이스라엘군이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WSJ는 “군의 방어 실패로 이스라엘인들은 안전에 대한 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사회 한 축을 담당하는 하레디 집단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하레디는 유대교 경전 토라를 공부하며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는 집단으로,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군 면제 혜택을 받는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홀로코스트(집단학살)로 말살된 유대인 문화를 되살리자는 차원에서 하레디의 병역 의무를 면제했다. 일부는 면세 혜택도 누린다.
문제는 1948년 400여명에 불과하던 하레디가 2021년 122만명으로 늘어나면서 불만을 제기하는 일반인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하레디 내부에서도 군 면제를 포기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하레디 공공문제연구소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징병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지난 5일 9%에서 17일 29%로 급증했다. 응답자의 73%는 “최근 전쟁으로 이스라엘 사회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엘리 팔레이 하레디 공공문제연구소장도 “10월7일 사건의 장기적인 영향에 관해선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경제·안보 측면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하레디의 인식 변화가 이스라엘 의사 결정자들에겐 역사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WSJ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수십년간 국가 생존 자체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이젠 하마스 공격으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실존적 질문에 맞닥뜨렸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이스라엘 사회의 변화가 앞으로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존을 목표로 설립된 이스라엘 시민단체 기바트 하비바 공유사회센터 책임자 모하메드 다라우세는 “유대인 시민은 무장하고 그 반대편엔 아랍 시민이 서 있을 것”이라며 “이는 매우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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