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마당놀이로 살려낸 ‘동네 설화’
50~60대 15명 맹연습…공공 지원 끊기며 막 내릴 위기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는데 관객 호응도 좋고 공연도 재미지다니까요. 우리 지역을 알리는 일이어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결혼 이후 전남 영암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해온 박성심씨(59)는 ‘마당놀이’에 푹 빠졌다. 박씨는 지난 20일에도 영암군농촌활성화지원센터에서 주민 15명과 공연을 연습했다. 영암 주민들은 지역 설화를 바탕으로 마당놀이 <주모 덕진과 돌다리 이야기>를 만들어 공연하고 있다.
1000년 전 영산강 지류인 영암천 인근에서 주막을 하던 주모 ‘덕진’이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평생 모은 300냥으로 1000척(303m)이나 되는 돌다리를 놨다는 이야기다. 영암천 덕진교 근처에는 설화에 나오는 다리 터가 남아 있고 공적비도 있다.
덕진 역을 맡은 박씨는 “영암에 살면서도 몰랐던 이야기를 마당놀이를 통해 알게 됐다. 남편과 함께 덕진다리도 직접 가봤다”며 “덕진의 희생정신을 통해 영암을 알리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에 대한 애착도 커졌다”고 말했다.
인구 5만2000여명의 영암군에는 전문 극단이 없다. 주민들이 마당놀이를 만든 것은 지역 이야기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올해 3월 영암군농촌활성화지원센터에서 추진한 ‘농촌생활문화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며 ‘덕진 설화’를 공연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참여한 이들은 모두 영암에 사는 50~60대 주민이다. 면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도 여럿 있다. 처음에는 마당극 대본을 전문 작가에게 맡겼다. 하지만 1시간여 분량의 대본은 ‘연극 초짜’ 주민들에게는 무리였다. 대사가 너무 길거나 말투 등도 낯설었다.
결국 영암에서 국악 공연 기획사를 운영하는 임상욱씨(56)가 총감독으로 나섰다. 임 총감독은 공연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봐왔던 마당놀이를 제안했다. 주민들에 맞춰 30여분 분량의 대본도 직접 썼다.
주민들은 지난 7월부터 20여차례 맹연습을 했다. 관객들과 소통하는 마당놀이를 위해 공연 도중 연포탕도 끓인다. 의상과 소품도 직접 제작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농사용 ‘물뿌리개’ 등을 동원하는 식이다.
<주모 덕진과 돌다리 이야기>는 지난 9월 덕진 설화의 고향인 덕진면 영보정에서 첫선을 보였다. 임 총감독은 “공연을 본 관광객과 주민들이 ‘처음인데 너무 잘한다’고 놀라워했다”면서 “주민 단원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하지만 23일 영암 가야금산조기념관 공연장에서 열리는 두 번째 무대는 주민들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마당놀이지만 공연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 총감독은 “지원이 거의 끊겼고 공공기관도 무관심해 공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사 외우기도 어렵고 준비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어 힘들었지만 지금은 영암에 대한 마음이 돈독해졌다”면서 “재미있게 더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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