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늪’ 더 깊이 빠지기 전에…원인별 ‘맞춤형 지원’으로 일상회복 도와야[아듀 2023 송년 기획-상처 난 젊음, 1020 마음건강 보고서]
정신건강 악화→고립·은둔 악순환
가족 등 주변 지지가 ‘출구의 시작’
정부, 내년 청년미래센터 4곳 설치
위험군 발굴·지원…취업 연계까지
“지금은 약간 점점 늪에 빠지는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좀 희망이 잘 안 보이는….”
2020년 광주광역시의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때 심층면접에 참여한 A씨(당시 26세)는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A씨는 학교 다닐 때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폭력적인 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은둔 생활을 시작해 5년 이상 지속했다. 일자리도 소개받아 찾아가봤지만 계속하기 어려웠다. “밖에 나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그래서 또 정상적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불안’이 큰 것 같다고 했다.
대학생 이주은씨(22)는 몇년 전 2개월여 ‘방 안’에서만 지내는 은둔 생활을 했다. 이씨는 지난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초등학생 때 또래 괴롭힘으로 힘들었다”며 “중학생이 된 후 우울감이 심해져 자해·자살 시도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병원 입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압도돼” 방 안에 자신을 가뒀다.
은둔할 때 마음은 어땠을까. 이씨는 “자기혐오가 심했다”며 “내 방 안은 어두운데 창가로 스며드는 밝은 빛에 알 수 없는 괴리감, 불편함이 있었다”고 했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자는” 일상이 이어졌고 동영상 콘텐츠를 보거나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견뎠다”고 했다. 그는 “100% 타의로,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은둔을 끝내게 됐다”고 했다.
사회적 관계의 양이 적고 외출을 잘 하지 않는 ‘고립·은둔’은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이 깊다. 정신건강 문제는 고립·은둔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첫 전국 단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정신건강이 안 좋다고 답했고, 4명 중 3명은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고립·은둔 계기 1위는 직업 관련 어려움이었다. 이어 대인관계, 가족관계, 건강 등의 순이었다. 광주시 실태조사에서는 청소년은 은둔의 계기가 학업 중단·실패가 가장 컸고 이어 정신적 어려움, 대인관계 등의 순이었다. 청년은 취업 실패, 정신적 어려움, 대인관계 등의 순이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비영리단체 ‘멘탈헬스코리아’에서 상담·강연 등을 하는 이씨는 고립·은둔 ‘계기’에 따라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 증상이 심해져 은둔을 한 제 경험에 한해 말하면, 부모와 살면서 은둔하는 10대 청소년은 부모가 지지하는 태도를 유지해주시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이슈페이퍼(2022년 10월)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을 이야기하다’는 “출구의 시작은 본인 스스로 혹은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보호자가 자녀를 믿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소년 은둔에서는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 은둔 기간이 짧을수록 ‘탈은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가정과 학교, 학교 밖 상담기관 등에서 대인관계 어려움, 학교폭력 등을 경험하는 청소년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관심이 필요하다. 등교거부, 밤낮 생활 뒤바뀜, 인터넷 몰입·게임 중독 등은 ‘징후’로 볼 수 있다. 특히 ‘인터넷 몰입·게임 중독’은 그 자체가 은둔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은둔 생활 동안 따로 할 것이 없으니 인터넷 사용과 게임 중독이 심해지면서 은둔 상태가 더욱 심해진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내년 4개 광역시도에 청년미래센터(가칭)를 설치해 고립·은둔 청년을 발굴·지원한다. 핵심은 전담 사례관리사가 온라인으로 신청한 고립·은둔 청년의 회복계획을 짜서 ‘일상회복’을 돕는 것이다. 필요하면 정신건강 서비스, 취업 연계 서비스도 제공한다. 특히 정신건강 서비스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광주시 실태조사 보고서는 “(당사자의) 상담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며 “(고립·은둔 생활자에 최적화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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